| 제목 | 주포면 봉당리(鳳堂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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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보령문화원 | 등록일 | 2002-07-08 | 조회 | 1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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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때는 신촌현(新村縣)에 속했었다. 신라(新羅)때는 신 읍현(新邑縣)에 속했으며 고려(高麗)때는 보령현(保寧縣)에 속했었다. 조선(朝鮮)때에도 보령현(保寧縣)에 속했으며 조선말엽(朝 鮮末葉)엔 보령군(保寧郡) 주포면(周浦面)의 구역(區域)인데 1914年 행정구역(行政區域) 개혁(改革)때 원당리(原堂里) 사청리 (射廳里)의 각(各) 一部와 장척면(長尺面)의 고남리(古南里) 도 랑당리(道郞堂里)하리(下里) 일부를 병합하여 봉당성(鳳堂城)의 이름을 따서 봉당리(鳳堂里)라 하였다. `95년1월 1일 법률 제 4774호로 대천시와 보령군 통합, 보령시 주포면이 되었다. 고나미 사청(射廳) 서북(西北)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고나 미」고남(告南) 고남리(古南里)라고 부른다. 옛날 원님이 북쪽에 서 살다가 이 부락 남쪽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해서 남쪽에 원님 이 있다 해서 「고남」「고나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원댕이 사청(射廳)의 동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원댕이」라 고 부른다. 옛날 유명한 도학자(道學者)가 태어난 마을이라 그 학자의 호(號)가 종승당인데 「종승당」이 유명한 학자가 된 원 마을이라 해서 「원당이」라고 부르다가 「원댕이」「원당」「원 당리」라고 부른다 한다. 사청(射廳)이 「원댕이」서(西)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사청(射廳)이 라고 부른다. 조선(朝鮮)때에 사창(社倉)이 있었고 활을 쏘던 곳 이라하여 사청(射廳)이라고 부른다. 또한 「새챙이」「사청리」 라고도 부른다. 도랑댕이 「射廳이」북(北)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도랑댕이」 라고 부른다. 옛날엔 도랑당(道郞堂)인 신당(新堂)이 있었다 해 서 「도랑당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도랑댕이」라고 부른 다. 미력잇들 「도랑댕이」와 「사청이」사이에 들이 있는데 이 들을 「미력잇 들」이라고 부른다. 들에 미륵이 있었다 해서 「미륵잇들」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미륵잇들」이라 부른다. 벌 뜸 「사청이」북쪽에 있는 큰 뜰을 「벌뜰」이라고 부른다. 「벌 들」가운데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벌뜸」이라고 부른다. 社穆(사직)집터 「사청」동쪽으로 「사직집터」가 있다. 조선(朝鮮)때 보령현(保 寧縣)의 사직(社穆)집터다 유투쟁이보 「고나미」동(東)쪽으로 보가 있는데 여기를 「유투쟁이보」라 고 부른다. 버드나무 정자가 있었던 보다. 주포말 「사창이」동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주포(周浦)말이라 고 부른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따서 주포면(周浦面)이라 하였다. 古南山城(고남산성) 보령성(保寧城)에서 남(南)쪽으로 3㎞지점에 자리한 토성(土城) 이 고남산성(古南山城)이다. 보령현(保寧縣)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씨 조선(李氏朝鮮) 정종(正宗) 2年(1400)에 築城한 성이다. 지 금은 대개 허물어져 있으나 성의 주위가 약486m이며 봉당산성(鳳 堂山城)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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