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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 유적

내용

유관순열사 유적(柳寬順烈士 遺蹟) 

(사적 제230호)


3 ∙ 1운동 때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한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의 유적으로, 생가와 매봉교회, 유적비, 추모각 그리고 봉화를 올렸던 봉화터가 있다.
3·1운동 당시 일본 헌병에 의해 불타 없어진 유관순 열사의 생가터에 유허비를 세웠는데, 1977년 정화사업을 하면서 유관순기념비를 다시 세웠다. 또 유 열사의 오빠 중석(重錫)이 살던 초가를 기와집으로 개축하였고, 3·1운동 당시 봉화지인 매봉에는 봉화대와 봉화탑을, 매봉 넘어 탑원리에는 유관순사우(柳寬順祠宇)를 건립하였다. 생가 옆에는 매봉교회(梅峰敎會)를 지어 유 열사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하고 있다.
유관순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1916년에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다음해에 3 ∙ 1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시위에 참가하였고, 일제의 휴교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날에 시위운동을 벌여 열사의 부모를 비롯하여 19명이 죽고 30명이 부상당했으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유열사는 모진 고문을 당하여 일본의 잔인한 행패로 1920년 10월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시신은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도시개발 중 묘소가 유실되고 말았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고, 1972년에는 유관순의 애국정신을 길이 추모하고 3 ∙ 1운동의 빛난 얼을 선양하고자 사우(祠宇)를 건립하고 서있는 모습의 영정을 모시었다. 1977년에는 아우내 거사의 숭고한 뜻을 선양하고자 봉화대와 봉화탑을 건립하고 매봉교회를 보수하였다. 1986년에 경역을 재정비하면서 사우를 확장 ∙ 개축하고 명칭을 추모각(追慕閣)으로 바꾸고, 앉아있는 모습의 영정을 새로 제작하여 봉안하였다. 1991년에는 병천면 용두리의 옛 집터에 유관순의 생가(生家)를 복원하였으며, 매년 2월 28일에 3·1절 경축전야제를 개최한다.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자료정리 아우내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