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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중악단 (鷄龍山中嶽壇)

계룡산중악단 (鷄龍山中嶽壇)

소개

종 목 보물 1293호
명 칭 계룡산중악단 (鷄龍山中嶽壇)
분 류 사묘재실
수 량 일곽(3동)
지정일 1999.03.02
소재지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산8
시 대 조선 고종
소유자 신원사
관리자 신원사

내용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 

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 
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 
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 
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 
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 
을 모셔 두었다.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 
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인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 
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 
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 
으나, 중악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 

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