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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초상 일괄 (尹拯肖像 一括)

윤증초상 일괄 (尹拯肖像 一括)

소개

* 국가지정 보물 제1495호(2006년 12월 29일 지정)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

내용

윤증은 팔송(八松) 윤황(尹煌)의 손자이고 , 노서(魯西)윤선거(尹宣擧)의 아들이며, 자는 자인(子人)이고, 호는 명재(明齋)이며, 본관은 파평인(坡平人)이다.

윤증은 1629(인조7)부터 1714(숙종 40) 사이에 살다간 조선때의 학자로 유계(兪棨), 권시,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등 고명한 학자들에게 수학하였으나 아버지와 같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윤증초상은 숭정기원후재갑자사월모(崇禎紀元後再甲子四月摹)’라는 묵서가 있는 측면전신좌상은 1744년 작품으로, 영당기적에 숭정기원후, 재갑자사월, 영자이모사본, 정면일인면삼, 화사장경주(崇禎紀元後, 再甲子四月, 影子移摹四本, 正面一仄面三, 畵師張敬周)라고 있어 장경주의 작품으로 확인된다.

숭정기원후삼술신이월모(崇禎紀元後三戊申二月摹)’라는 묵서를 지닌 1788년작 윤증초상 2점은 영당기적의 내용을 통해 이명기가 모사했음을 알 수 있다. 영당기적에 따르면 정면 1본과 측면 1본은 신법을 가미하여 그리고, 구본의 화법을 후대에 전하지 않을 수 없어 구법을 따라 측면 1본을 그렸다.

이명기가 제작하여 현존하는 초상화 2점은 장경주 필 윤증상과 그 모습이 흡사한 구법에 따라 그린 측면상과 이명기의 개성적 화풍으로 그린 입체표현이 선명한 신법의 측면상이다. 정면과 측면의 흉상 2점은 화면에 묵서가 남아있지 않아 제작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정면상과 측면상은 같은 비단에 같은 화가의 솜씨로 추정된다. 측면상을 전신상과 비교해 보면 크기나 기법이 장경주가 그린 초상화와 같다.

초상화와 함께 전하는 영당기적은 윤증 초상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을 담은 필사본으로, 1711년 변량이 윤증의 초상을 처음으로 그렸던 사례부터 1744년 장경주, 1788년 이명기, 1885년 이한철이 모사할 때까지 4번의 제작사례를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제작일정 및 제작된 초상의 수, 구본 및 신본의 봉안과장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윤증이 차지하는 비중과 함께 현존하는 장경주와 이명기가 그린 윤증초상은 조선후기를 대표 할만한 뛰어난 회화적 격조를 지니고 있어 중요성을 지닌다. 아울러 영당기적은 초상화 제작과 이모과정 그리고 세초의 전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로 지정된 이들 작품 외에도 종가에는 1919년 및 1935년작 전신좌상 및 소묘초본이 여러점 전하고 있다.

 

출처 : 논산의 문화재, 논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