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영산회괘불정 (보물1264호)
내용
석가불이 영취산에서 범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
도(靈山會上圖)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비로사나불(毘盧舍那
拂)이 협시(脇時)하였으며 그 밖에는 두광에 칠화불(七化佛)과
신광(身光)에 팔화불(八化佛), 제석(帝釋)과 범천(梵天), 그리
고 상당부에 육분신불(六分身佛)을 배치함으로써 복잡한 군도형
식에서 벗어나 횡렬로 배치된 구도이다. 권속들은 보살과 제자
상 그리고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생략되었지만 많은 화불(化佛)
과 십방제불(十方諸佛)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인 석가불의 형상을 원형 두광에 키형 신광을 갖추고
서 있는 상으로 화면 가운데 크게 묘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
금 압도당하게 한다. 사각형의 얼굴은 중후하나 살찐 두 어깨
에 유난히 길고 굵은 팔, 짧은 하체 등이 비현실적으로 보인
다. 윤곽선으로만 표현된 나발, 옆으로 퍼진 육계에 정상계주
와 중앙계주를 표시하였고 반쯤 뜬 눈과 작은 입술 등이 형식적
이며, 두 귀도 역시 형식적이다. 법의는 한쪽 어깨를 드러낸 우
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를 입었으며, 법의 안에는 꽃문양으로
장식된 하의와 보상화문(寶相華紋)과 도형문양(圖形紋樣)이 조화
되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키형 신광 안에는 모단당초문(牡丹唐
草紋)과 연화(蓮華)의 변형된 꽃 문양이 가득차게 그려서 현란
해 보인다. 노사나불(盧舍那佛)과 비로사나불의 위치가 바꾸어
졌는데, 도상의 혼란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사나불은 화
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 부근에 들어 올려 설법인(說法
印)을 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또한 그 크기가 본존보다 유
난히 작게 모사한 점은 충남 공주군 마곡사 괘불(忠南 公州郡 麻
谷寺 掛佛)등에서 볼 수 있는 도상이다. 모두 이중윤광(二重輪
光)을 지고 상단 좌우 끝 편에 배치되어 본존불을 강조하였다.
본존불 두광에 화도문으로 장식하고 거기에 칠화불(七化佛)을
봉안했는데, 모두 이중윤광을 지고 통련외 법의(法衣)를 입었고
연화좌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형상인데 각기 지물(持物)과
수인(手印)을 달리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부터 약합(藥盒), 금강
저(金剛杵), 선정인(禪定印), 변형된 설법인(說法印), 연화(蓮
華), 지권인(智券印), 변형된 설법인(說法印)을하고 있다. 이들
의 존명(尊名)은 알 수 없으나 다보여래(多寶如來), 보승여래(寶
勝如來),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광법신여래(廣法身如來), 이
포의여래(離怖意如來),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 아미타여래(阿
彌陀如來) 등 칠여래로 보여지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7화
불의 이중윤광 위로 서운(瑞雲)을 각기 방향에 따라 묘사하고 사
이사이에 본존불 정상계주에서 흘러 나오는 흰 연기와 보주가 단
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키형신광에서도 바깥테두리를 화염문으
로 장식하고 거기에 팔화불(八化佛)을 묘사하였다. 이중윤광을
지고 통견의 법의(法衣)를 걸치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
은 두광의 화불과 같으나 크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오른쪽 위
로부터 설법인(說法印), 금강저(金剛杵), 선정인(禪定印), 약합
(藥盒) 그리고 왼쪽으로부터 설법인(說法印), 연화(蓮華), 변형
된 설법인(說法印), 선정인(禪定印)등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는
데 이는 칠여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지나, 좌우대칭의 배치
구도상 한 여래가 더 보태진 것으로 보여진다.신광 제일 밑 부분
에 서 있는 상(像)은 제석(帝釋)과 범천(梵天)으로 원형 두광과
키형신광을 지고 보존을 향하여 합장한 자세이다. 형상은 보살
의 전형적인 모습인 화관(花冠)에 천의를 입고 있으나 지물(持
物)울 들고 있지 않고 합장(合掌)한 모습으로 보아 문수(文殊)
와 보현보살(普賢菩薩)로 보여지지 않고 제석(帝釋)과 범천(梵
天)으로 추정된다.
상단위에는 3구(軀)의 심방제불(十方諸佛)이 배치되어 있는
데, 배경은 오색(五色)의 서운(瑞雲)으로 감싸고 있어 장엄한 분
위기를 느끼게 한다. 하단좌우 끝에 2송이의 대형 연화도 장엄
한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고 있다.
이 괘불은 18세기 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괴량감을 느
끼게 하는 얼굴과 비대한 신체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신체비례
와 복잡한 도안화한 문양에서 이 시대의 불화보다는 수법이 떨어
지나 홍색의 주조색(主調色)과 녹색의 두광, 의습(衣褶)에 보이
는 강렬한 색조의 대비가 어우러져 화려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주상전하 왕비전하(主上殿下 王妃殿下) 그
리고 세자저하(世子邸下)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고 우운당 대선사
(友雲堂 大禪師)가 증면하고 화사(畵師)는 유성(有誠)등 11인의
승려가 건융(乾隆) 37년(1772)에 대영산괘불정(大靈山掛佛貞)을
하였음을 알수 있다.拂)이 협시(脇時)하였으며 그 밖에는 두광에 칠화불(七化佛)과
신광(身光)에 팔화불(八化佛), 제석(帝釋)과 범천(梵天), 그리
고 상당부에 육분신불(六分身佛)을 배치함으로써 복잡한 군도형
식에서 벗어나 횡렬로 배치된 구도이다. 권속들은 보살과 제자
상 그리고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생략되었지만 많은 화불(化佛)
과 십방제불(十方諸佛)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인 석가불의 형상을 원형 두광에 키형 신광을 갖추고
서 있는 상으로 화면 가운데 크게 묘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
금 압도당하게 한다. 사각형의 얼굴은 중후하나 살찐 두 어깨
에 유난히 길고 굵은 팔, 짧은 하체 등이 비현실적으로 보인
다. 윤곽선으로만 표현된 나발, 옆으로 퍼진 육계에 정상계주
와 중앙계주를 표시하였고 반쯤 뜬 눈과 작은 입술 등이 형식적
이며, 두 귀도 역시 형식적이다. 법의는 한쪽 어깨를 드러낸 우
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를 입었으며, 법의 안에는 꽃문양으로
장식된 하의와 보상화문(寶相華紋)과 도형문양(圖形紋樣)이 조화
되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키형 신광 안에는 모단당초문(牡丹唐
草紋)과 연화(蓮華)의 변형된 꽃 문양이 가득차게 그려서 현란
해 보인다. 노사나불(盧舍那佛)과 비로사나불의 위치가 바꾸어
졌는데, 도상의 혼란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사나불은 화
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 부근에 들어 올려 설법인(說法
印)을 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또한 그 크기가 본존보다 유
난히 작게 모사한 점은 충남 공주군 마곡사 괘불(忠南 公州郡 麻
谷寺 掛佛)등에서 볼 수 있는 도상이다. 모두 이중윤광(二重輪
光)을 지고 상단 좌우 끝 편에 배치되어 본존불을 강조하였다.
본존불 두광에 화도문으로 장식하고 거기에 칠화불(七化佛)을
봉안했는데, 모두 이중윤광을 지고 통련외 법의(法衣)를 입었고
연화좌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형상인데 각기 지물(持物)과
수인(手印)을 달리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부터 약합(藥盒), 금강
저(金剛杵), 선정인(禪定印), 변형된 설법인(說法印), 연화(蓮
華), 지권인(智券印), 변형된 설법인(說法印)을하고 있다. 이들
의 존명(尊名)은 알 수 없으나 다보여래(多寶如來), 보승여래(寶
勝如來),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광법신여래(廣法身如來), 이
포의여래(離怖意如來),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 아미타여래(阿
彌陀如來) 등 칠여래로 보여지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7화
불의 이중윤광 위로 서운(瑞雲)을 각기 방향에 따라 묘사하고 사
이사이에 본존불 정상계주에서 흘러 나오는 흰 연기와 보주가 단
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키형신광에서도 바깥테두리를 화염문으
로 장식하고 거기에 팔화불(八化佛)을 묘사하였다. 이중윤광을
지고 통견의 법의(法衣)를 걸치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
은 두광의 화불과 같으나 크기가 조금 다를 뿐이다. 오른쪽 위
로부터 설법인(說法印), 금강저(金剛杵), 선정인(禪定印), 약합
(藥盒) 그리고 왼쪽으로부터 설법인(說法印), 연화(蓮華), 변형
된 설법인(說法印), 선정인(禪定印)등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는
데 이는 칠여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지나, 좌우대칭의 배치
구도상 한 여래가 더 보태진 것으로 보여진다.신광 제일 밑 부분
에 서 있는 상(像)은 제석(帝釋)과 범천(梵天)으로 원형 두광과
키형신광을 지고 보존을 향하여 합장한 자세이다. 형상은 보살
의 전형적인 모습인 화관(花冠)에 천의를 입고 있으나 지물(持
物)울 들고 있지 않고 합장(合掌)한 모습으로 보아 문수(文殊)
와 보현보살(普賢菩薩)로 보여지지 않고 제석(帝釋)과 범천(梵
天)으로 추정된다.
상단위에는 3구(軀)의 심방제불(十方諸佛)이 배치되어 있는
데, 배경은 오색(五色)의 서운(瑞雲)으로 감싸고 있어 장엄한 분
위기를 느끼게 한다. 하단좌우 끝에 2송이의 대형 연화도 장엄
한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고 있다.
이 괘불은 18세기 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괴량감을 느
끼게 하는 얼굴과 비대한 신체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신체비례
와 복잡한 도안화한 문양에서 이 시대의 불화보다는 수법이 떨어
지나 홍색의 주조색(主調色)과 녹색의 두광, 의습(衣褶)에 보이
는 강렬한 색조의 대비가 어우러져 화려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주상전하 왕비전하(主上殿下 王妃殿下) 그
리고 세자저하(世子邸下)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고 우운당 대선사
(友雲堂 大禪師)가 증면하고 화사(畵師)는 유성(有誠)등 11인의
승려가 건융(乾隆) 37년(1772)에 대영산괘불정(大靈山掛佛貞)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