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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사적 316호)

보원사지 (사적 316호)

내용

보원사지는 가야산(677.6m) 줄기의 상왕산 동편 계곡에 조성된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위치한 곳에서 강당천(講堂川)옆 소로를 따
라 상류로 2km쯤 올라가면 보원사의 옛터가 한눈에 보인다. 옛
보원사사의 창건 연대와 소멸 시기가 전해진 문헌이 없어 정확
히 알 수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옛부터 전하는 이야기와 출
토된 유물로 보아 백제 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터에 다시 신라
말에서 고려초기 사이에 보원사를 건립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
다.
1969년에 보원사지의 금당지 남쪽 건물 터에서 백제시대(6세
기 중엽) 금동불입상(크기 9cm)이 출토되어 부여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으며 1918년 금당지에서 중앙박물관으로 가져간 철조여래
좌상(크기 1.5cm)이 학계에서 연구된 결과 통일신라 시대의 철불
로 알려졌으며 1968년에 보원사지에서 출토되어 중앙박물관에 보
관된 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등이 출토된 사례와 통일신라 말 진
성여왕 7년(893)에 부성군(富城郡-현 서산) 태수를 역임한 고운
최치원이 남진 범장화상전(法蔣和尙傳)에 ''옹주 가야협(壅州 伽
倻峽) 보원사는 의상을 계승한 십사(十寺) 중의하나''라는 기록
문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 당시에 보원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
다.
현재 보원사지내에 현존한 보물 제 102호 석조, 보물 103호 당
간지주, 보물 104호 5층석탑, 보물 105호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
師寶乘塔), 보물 106호 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등 6
점의 석조 유물들은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기와 같은 출토된 유물과 문헌 및 현존 석조유물들로 미루
어 보아 이곳보원사지는 백제 시대부터 통일 신라시대에 이르기
까지 사찰이 건립되었다가 소멸되어 고려초에 다시 창건하였거
나, 또는 백제시대에 보원사가 창건되어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
려 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제 4대 광종의 국사였던 법인국사가 보
원사에 기거하면서 보원사를 크게 충창하여 조선시대까지 존재
해 온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보원사의 소멸 연대 또한 정확
히 알 수 없으나 다만 개심사에 보존된 경판(經板)중에 조선 명
종 20년(1565), 21년(1566), 선조 24년(1591)에 제작된 보원사
제품이 발견되어 보원사가 1591년 이후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
다. 법인국사 보승탑비의 내용에 승려 1천여 명이 기거했다는
명문이 보이며 사지 내에 100여개소의 크고 작은 사찰 건물 터

가 남아 있다. 보원사지의 사적 지명 면적은 31,123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