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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향교 (기념물 116호)

서산 향교 (기념물 116호)

내용

조선(朝鮮)시대에 와서 유교(儒敎)가 국교(國敎)로 정해지면서 

태종 7년(1407)에 360여주(州)에 향교를 건립토록 하였다. 우리
고장 서산은 1403년에 조종생(趙從生)이 서산에 지군사(知郡事)
로 부임해 와보니 글을 읽는 선비들이 대부분 사찰(寺刹)에서 공
부하는 것을 보고 지방 유지들을 모아 향교건립 취지를 의논하
니 모두가 찬성하여 태종 6년(1406)에 서산 관아 서문밖에 향교
(鄕校)를 창건(創建)하였다.
그후 160여년이 지난 한경춘(韓慶春), 김호윤(金好尹), 김호설
(金好說)등이 통일지(統一志)와 오례의(五禮儀)에 동쪽은 천지만
물의 생동하는 방향이며 서쪽은 만물이 죽어가고 감추는 방향이
어서 향교는 반드시 동문(東門)밖에 건립(建立)되어야 한다고 주
장하며 현재의 서문(西門)밖에 건립된 향교의 땅이 매우 습하고
협소하여 동문(東門)밖으로 이건(移建)해 줄 것을 당시 최여림
(崔汝霖) 군수에게 건의하니 크게 기뻐하며 민폐를 끼치지 않고
선조(宣祖) 7년(1574)에 현재의 동문으로 이건 하여 오늘에 이르
렀다.
특히 서산향교가 특이한 점은 전국의 향교 대성전(大成殿)대부
분의 건물이 맞배지붕 건물인데 비해 서산향교 대성전은 팔짝지
붕 건물로 향교 건물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
다.
현재 대성전(大成殿)내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유학자(儒學
者) 7명과 우리나라 선현(先賢) 18명 등 25명의 신위(神位)가 모
셔져 있다.

충청남도 지정문화재(기념물) 제 11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