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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사 (문화재재료 198호)

부성사 (문화재재료 198호)

내용

지곡면 산성리 부성산 남쪽에 건립된 부성사는 통일실라말 진성 

여왕 7년(893)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당시 부성군(현 서
산) 태수를 역임한 연유로 조선 선조때에 선생의 덕망과 학문을
따르던 지방 유림들이 부성산성내에 사우를 건립하고 영정과 위
패를 봉안하였다. 당시 사우의 이름은 도충사(道忠祠)라 불러
오다가 건물이 훼손되어 1913년 10월에 당시 권익채 서산군수가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고 사우의 이름을 부성사로 개명하였다.
최치원은 37세(893)의 나이로 부성군 태수역임시에 조정에서
선생을 하정사(賀正使)로 삼아 당나라에 파견하려 하였는데 당
시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전구에 도적이 많아 길이 막혀 포기하
고 말았다. 다음 해인 진성여왕 8년(894)에 선생이 당시의 시무
책(時務策)을 상소하였는데 조성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선생에게
육두품의 벼슬인 아찬을 내렸다.
현재의 부성사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된 평삼문형식으
로 건립된 외삼문을 들어 서면 4각 주초석 위에 사각 기둥을 세
운 홑처마 팔작지붕의 동서채가 있고 이곳을 지나 조금 높게 조
성한 일곽의 대지 위에 사괴석 담장을 돌리고 그 안에 사당을 건
립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평면을 구성
하고 전면 1칸통을 개방하여 전퇴(前退)를 만들고 내부의 우물마
루를 깔고 창로는 정면 3칸 모두 삼분합 띠살문을 달았다. 건물
의 구조는 가공된 자연석 기단을 조성하고 원형 주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무출목 초익공계이며 창방위에 소로가 중앙칸
에 4개 양합칸에 3개씩을 놓아 주심도리 장혀를 받쳤다. 지붕
은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의 크기는 본당(34m2), 내삼문(9m2), 동재(41m2), 서재

(26m2), 외삼문(2m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