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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충사 (문화재재료 204호)

진충사 (문화재재료 204호)

내용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위치한 국사봉 동쪽 기슭에 건립된 진충 

사는 조선 중기의 명장 충무공 정충신(忠武公 鄭忠信) 장군의 영
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부조지전(賜不眺之典 - 조정에 큰 공훈이
있는 공신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게 하던 특권)의 사우(祠
宇)이다. 진충사의 창건연대는 도선 인조 14년(1636년) 8월에
왕명으로 건립되었고 영조 13년(1737) 10월에 중수하였다. 정
조 24년 (1800) 5세손 곡성현감(谷城縣監)정세흥에 의해 당진군
정미면 신시리로 이건 되었다가 광무(光武)1년(1897년) 2월에 9
세손 정재칠(鄭在七)대에 지곡면 대요리 740번지 종손가 옆으로
다시 이건 하여 73년간 봉안해 오다가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축 하였다. 사우의 본당에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 휘호로 된
현판이 걸려 있다.
진충사가 이곳에 건립된 사유는 조선 인조 2년(1624)에 이괄
(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안주병사겸 방어사로 있던 정충
신 장군이 전부대장으로서 토벌군을 이끌고 서울 길마재에서 반
군을 전멸시킨 공으로 조정에서 진무공신 1등을 내고 금남군(錦
南君)에 봉하였다. 당시 많은 공신들이 반적의 몰수된 전답과
노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나 정충신 장군만 그런 뜻이 없는 청렴
결백한 것을 보고 당시 장군의 상사였던 옥성부원군 장만(玉城府
院君 張晩)이 임금에게 공신 가운데 오직 정충신만이 아무것도
얻은 바 없다고 상소를 올려 임금이 당시 서산의 마힐산(摩詰
山 - 지금의 지곡면 대요리의 국사봉)일대의 몰수된 이괄의 토지
(당시 약45만평)를 하사하여 장군의 사패지지(賜牌之地)가 되었
다. 이로 인하여 장군이 생존시에 유택(幽宅)으로 국사봉을 택
하였고 사후에 이곳에 안장하게 되었으며 장군의 유택 부근에 진
충사를 건립하게 되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전퇴칸을 두고 겹처마 팔작지붕
이다. 건물의 규모는 본당 8평, 내삼문 3평, 동재겸 유물전시
관 12평, 외삼문 3평, 내담장 150m, 외담장 80m와 사적비 1기,
홍살문 등이 있다. 매년 양력 4월 25일은 정일(定日)로 시민(時

民)과 유림(儒林)이 모여 제향(祭享)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