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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심검당 (문화재재료 358호)

개심사 심검당 (문화재재료 358호)

내용

보물 제 143호 개심사 대웅전을 바라보고 좌측(서편)에 건립된 

심검당은 그 건축년대늘 기록한 문헌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성종실록』에 성종 6년(1475) 6월에 충청
도 절도사 김서형(金瑞衡)이 가야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산불을
내어 개심사의 건물이 화재로 전소된 것을 성종 15년(1484)에 대
웅전을 비롯 건물을 중창했다는 기록과 1914년도에 대웅전 건물
을 해체 보수당시 마루도리속에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
했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심검당(尋劍堂)건물도 이때에 같이 중
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검당의 건충양식을 살펴보면 화강석재를 견치석으로 쌓은 기
단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주두(柱
頭) 위에 공포(供包)를 짜올린 주심포계(柱心包系)양식이며 가구
는 5량집이다. 초제공 밑 주두 아래로 운각(雲刻)을 한 보아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익공계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초제공과 2
제공 뿌리는 앙설(仰舌)로 되어있고 3제공만이 초각(草刻)되었
다.
심검당의 평면배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건물의 좌측에 정
면 3칸 측면 5칸의 덧집을 달았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 집
이다.

건물 총면적 : 111.4m2(심검당 63.2m2, 덧집 48.2m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