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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군 이광악 선무공신교서

소개

광남군 이광악 선무공신교서(廣南君 李光岳 宣武功臣敎書)
(보물 제952호)

내용

선조37년(1604)임진왜란 때 진주성(晉洲城) 방어에 공을 세워 선무공신(宣茂功臣)이 된이광악(李珖岳,1557~1608)에게 내린 교서(敎書)이다. 

교서의 맨 오른쪽에는 ‘교 효충장의 선무공신 가의대부 광남군 이광악 서(狡 效忠葬儀 宣武功臣 嘉義大夫 廣南君 李光岳 書)’라는 제명(題名)이 붙어 있고,그 옆으로 진주성을 방어한 이광악의 공적과 공신에게 내려지는 특전,선무공신 명단 등이 기록되어 있다.본래 1장의 두루마리 형태로 작성되어 있던 것을 후손들이 잘라서 명주로 첩장(帖裝)하였다. 총 10면이며, 각 면에 7행씩 총 62행이 해서(楷書)로 필사되었고, 연월 일 위에‘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다.
이광악은 자는 진지(鎭之), 본관은 광주(廣州)로 선조 17년(158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지방에서 선봉에 나서서 왜군과 격전하였고, 적이 진주를 포위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명으로 진주성에 들어가 목사(牧使)김시민(金時敏)을 도와 큰 공을 세웠다. 선조 37년(1604)에 경기방어사(京畿防禦使)가 되고 선무공신 3등으로 광남군(廣南君)에 봉해졌으며, 숙종(肅宗) 14년(1715)에 충장(忠莊)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문서에는 이광악의 자질과 품성, 경력, 진주성을 방어하는데 그가 세운 무공과 공신에게 내리는 특전등이 실려 있어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의 상황을 밝히고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포상정도를 살피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천안시 동남구 목천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소장 및 소유하고 있으며, 1988년 6월 16일에 보물 제952호로 지정되었다.



자료정리 아우내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