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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묘

소개

박문수 묘(朴文秀 墓)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내용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은석산의 꼭대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박문수의 묘소이다. 

조선 역대의 어사중 유일한 일화를 남긴 박문수는 본관이 고령으로 1691년(숙종 17)에 태어나 1756년(영조 32)에 56세에 졸하였다.
자는 성보(成甫)이고 호는 기은(耆隱),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723년 22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설서와 사관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고 1728년 (영조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는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활약하고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성군에 봉군이 되었다.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헌(忠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묘소 전면에는 묘비와 망주석(望柱石)등의 석물이 있는데, 문인임에도 장군석이 세워진 것이 특이하다.
1929년(영조5) 영남절도사로 있을때 관북(함경도지방)지방의 수재가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영남 제민창에 있었던 조 3천석을 미리 관북지방으로 발송하여 10여 고을의 수재민을 미리 구했으므로 함흥으로 만세교 옆에 북민비, 송덕비가 세워졌다.
왕명으로 여러 차례 어사로 출사(出使)하여 굶주리는 백성들의 구제에 힘쓴 일화는 유명하다. 1749년(영조 25) 호조판서가 되어 탁지정례(度支定例)를 만들어 경비절감을 하였으며 균역법(均役法)에도 관여하였다.
묘소 앞에는 망주석, 묘비, 무인석 등의 석물이 있으며 묘소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재실이 있고, 종가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재실 내에는 어사(御使)의 영정(影幀) 2폭이 보관되어 있으며, 재실과 이웃하여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지금은 박문수공의 유물이 모두 천안시립박물관에 기증되어 보관하고 있다.
묘는 북면 은석산의 정상부에 있고 묘비와 상석 그리고 장군석이 현존하고 있다. 묘의 높이는 2.3m이고 둘레는 12m이며 묘역은 사방 60보, 면적은 180평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6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박재삼이 소유 및 관리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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