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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흥경사 사적갈비

소개

봉선홍경사 사적갈비(奉先弘慶寺 事蹟碣碑)
(국보 제7호)

내용

경부선 성환역(成歡驛)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3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홍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직산현 역원조에 의하면, 이곳은 고을 북쪽 15리에 위치하고 있는 교통의 요지인데, 갈대가 무성하여 도적이 출몰하므로, 고려 현종이 승려 형긍(逈兢)에게 명하여 절을 세우게 하였고, 이에 병부상서(兵部尙書)강민첨(姜民瞻)이 감독하여, 1016년부터 1021년까지 2백여칸을 세우고, 봉선홍경사(奉先弘經寺) 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절 서쪽에 객관80칸을 세우고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 하여 행인을 위하여 양식과 마초(馬草)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간행 당시에 이미 절은 없어졌고 원 과 비석만 남아서, 절의 이름을 따서 홍경원(弘經院)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사적갈비는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절 이름 앞에 ‘봉선’이라 한 것 은 고려 현종의 아버지 안종(安宗)이 불교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고, 그 아들인 현종이 절을 완성하였으므로,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비석은 절이 완공된지5년 뒤인 1026년에 세워졌다.
갈비(碣碑)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한다. 대개 이수(離首)를 따로 얹지 않고, 비신(碑身)의 끝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비는 귀부(龜趺)와 이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址臺石)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귀부석의 머리는 어룡(魚龍)의 모습인데,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비좌(碑座)는 장방형으로, 복련(伏蓮)과 앙련(仰蓮)을 새겨 비신을 받치는 형상이다. 비신의 앞면에는 윤곽선을 돌리고 비문을 새겼는데, 바깥 주연(周緣)에는 당초문대(唐草紋帶), 양쪽 옆면에는 보상화문(輔相花紋)을 새겼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칭해졌던 한림학사(翰林學士) 최충(崔沖)이 찬(澯)하였고, 백현례(白玄禮)가 썼으며, 글자는 2.4cm 크기의 해서체이다. 비신 위편에는 가로로 ‘봉선홍경사갈기(奉先弘慶寺碣記)’ 라는 전액(篆額)이 음각(陰刻)되어 있고, 이수에는 높은 산 모양의 도식화된 운용문(雲龍紋)이 새겨졌다. 현재 완전하게 남아 있는 사적비 가운데 하나이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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