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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선생 생가지

소개

이동녕선생 생가지(李東寧先生 生家址)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

내용

천안시 목천읍 동리 79-2번지에 위치한 독립운동가인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 1869~1940)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동녕은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호는 석오(石吾)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상설 등과 만주에 있는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였다.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1910년에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 이강영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였고,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 원장, 외무총장을 지냈다. 그뒤 국무총리, 국무위원주석을 겸무하다가 1928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여 이사장이 되었으며, 1935년 한국국민당 간부로 활약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뒤 1939년 김구와 함께 전시 내각을 구성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중국 쓰촨성[四川城]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묘소는 서울의 효창공원(孝昌公園)에 있다.
면적은 2,608㎡이며, 건물의 배치 구조는 ㅁ자형의 안채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일자형의 대문간채가 어울려 ㄷ자형을 이룬다. 안채는 각주를 사용한 납도리의 5량가구 구조이며,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의 방이 있는데, 안채의 좌우로 3칸씩을 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간채는 서향으로 3량가구 구조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모두 5칸인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 칸씩의 방을 두었다. 안채에서 보아 북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대문이 있다. 사랑채가 있었으나 많이 변형되어 원형을 알기 어렵다.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자료정리 아우내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