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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

소개

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天安 金時敏將軍 遺墟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66호)

내용

임진왜란시 3대 대첩인 진주성대첩의 명장인 김시민장군의 생가지와 사사처가 유허지이다. 

김시민(金時敏)장군은 1554년(명종 9년) 음력 8월 27일(양력 9월 23일)에 당시 충청도 목천현백전촌(木川縣 栢田村) 지금의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백전부락에서 김충갑(金忠甲)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시민장군은 임진왜란중 한산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 등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끈 장군이 사망할 당시 벼슬은 진주목사였다. 전투를 독려 중에 적의 총탄에 이마를 맞고 서거하였으며, 당시 나이 39살이었다.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백전마을 노인들의 구전에 의하면, 이 곳은 김시민 장군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던 생가지로 전하고 있다. 현재는 1944년에 건축된 건물이 공가로 남아 있다.
사사처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9세의 어린 나이에 활을 쏘아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장소이며, 충무공의 상무정신과 용맹함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거북바위(구암龜巖)1기, 유적비 1기 등이 있다.
구암은 충무공의 부친인 구암(龜巖)김충갑(金忠甲)의 호와 관련이 있는 바위로서, [김씨세서 백전동천(金氏世居] 柏田洞天)]이라는 글씨가 뒤쪽에 새겨져 있다.
유적비는 1988년에 김시민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는데, 높이가 약 2m인 자연석 전면에 [충무공 김시민장군 사사처(忠武公 金時敏將軍 射蛇處]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건립자 및 건립연도가 새겨져 있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시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에서 3,800명의 군사로 3만명의 왜병을 맞아 2만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구암집] 등의 사료에 의하면 목천현 백전리(현 병천면 가전리)에서 출생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장군이 9세 때에 동네 앞 백전천의 이무기를 잡기 위해 활을 쏘았다는 사사처가 보존 관리되어 있다.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역사의 교육장으로 보존할 가치가 크다.

자료정리 아우내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