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외국인 며느리들 `영화감독 됐어요`
베트남에서 결혼중개업체 소개로 한국인 남편을 만나 충남 당진으로 시집온 웬티몽디엔(24). 남편은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고 홀로 집에 남았다. 불현듯 이역만리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 오른다. 그러자 캠코더를 켜고 그 앞에 앉는다. 이어 구슬픈 가락의 베트남 노래를 부른다. "어디에 있든지 고향이 그립다/어디에 있든지 사랑은 있다/그 먼 곳에서 당신은 더 행복할까…."
그가 직접 만든 3분짜리 영상물 '그리움 그리고 꿈'의 한 장면이다. 9일 오후 서울여성영화제가 열리는 신촌 아트레온극장에서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분홍빛 베트남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나온 그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려니 떨리고 긴장도 됐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여성영화제에는 베트남.중국.필리핀에서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이주 여성 8명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을 만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고 서울여성영화제와 당진문화원이 공동 주관한 '특별상영 : 이주여성이 만드는 여성영화 제작 워크숍'이란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참가자들은 올 초 당진문화원에서 3주 동안 영상교육을 받으며 짧게는 3분, 길게는 10분짜리 영상물을 만들었다. 이들의 작품에선 고향과 친정가족에 대한 그리움, 남편에 대한 사랑,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 등 다양한 감정이 드러난다. 베트남 유학생 방시벽아가 같은 베트남 출신 여성들의 결혼생활을 담은 '그들의 새로운 생활'도 함께 상영됐다.
'가족'이란 작품을 선보인 베트남 출신 땅티니(23)는 "먼저 한국에 온 언니가 괜찮은 남자라며 소개해줘 남편을 만났다. 다른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행복을 평생 간직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일곱 살, 다섯 살 짜리 딸들의 모습을 '나의 천사들'이라는 작품으로 만든 베트남 출신 원티느옥느아(35.한국명 백보현)는 "만드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나의 가족 이야기'의 필리핀 출신 조이(29)는 "남편은 잘해주는데 시부모님들이 워낙 엄해 시집살이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로잘리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국 생활 10여 년을 되돌아본 필리핀 출신의 로잘리나(47)는"내 이야기를 영상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니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럽다. 다행히 관객들이 좋아해 줘 아주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태양과 등대'를 만든 중국동포 최연순(37)씨는 "처음엔 어떻게 할지 몰라 아무거나 마구 찍은 다음에 편집을 하면서 이야기를 맞춰 나갔다"고 말했다.
최선희 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결혼 이민자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영상물로 표현하고 사회적으로는 이민자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특별상영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글=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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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4/11/29088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