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은 지방으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문화연대와 CGV가 한달에 한번씩 문화적으로 소외된 산간 벽지나 섬마을 같은 곳으로 트럭에 영사기와 필름을 싣고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여주는 '나눔의 영화관'이라는 행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특이하게 충남 당진에서 결혼 이민을 온 외국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충남 당진은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장가 못간 노총각들이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신부를 데려다 결혼해 사는 가정이 많은 지역입니다. 당진 문화원에서 이주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관계자는 이 지역에는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들이 70%로 제일 많고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이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눔의 영화관 진행 차량 여기에 영사기와 필름을 싣고 다닙니다.(사진제공:CJ CGV) 잔뜩 흐린데다 바람도 많이 부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100여명의 이주여성들과 남편, 아이들로 문화원은 북적였습니다. 세살난 딸아이와 함께 온 한 부부, 남편은 어정쩡하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아내는 결혼 후 처음으로 신랑과 영화보러 나왔다며 연신 싱글벙글 이었습니다. 이들이 본 영화는 '미녀는 괴로워'로 아직 DVD가 출시되기 전이라 자막이나 더빙은 하지 못했고 궁리 끝에 우리말과 베트남 말을 구사하는 베트남 유학생을 섭외해 현장에서 동시통역을 진행했습니다. 마치 무성영화 시절 변사처럼 말입니다. 보편적인 줄거리여서 관객들은 쉽게 영화를 이해했고 코믹한 장면에서는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저도 두 번째 보는데 아주 재미있게 다시 감상했습니다. 역시 정교하게 잘 만든 상업 영화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입니다.
이런 1회성 행사만으로는 8시 뉴스에 보도하기가 조금 약하다 싶어 고민했는데 다음달 초 개막되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바로 이 지역 이주여성들이 직접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이 눈에 띄였고 문의 결과 그 여성들도 이 자리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주 여성들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와 자신과 소통한다는 주제로 하면 소개할 만 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1월초부터 9명의 이주여성들이 17일간 워크샵을 통해 캠코더를 이용한 영화 만들기 방법을 배웠고 각각 5-10분 분량의 디지털 단편영화를 만들어 당진 문화원에서 1월 말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조촐한 영화제도 치뤘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한명인 40대 후반의 '로잘리나'라는 필리핀 여성을 인터뷰 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10년 가까이 됐다는데 아직 우리말이 서툴러 조금 의아했습니다. 회사로 돌아와 그녀가 만든 단편영화 '로살리나 이야기'를 봤습니다. 집은 컨테이너로 만든 조립식 주택이고 남편 벌이가 일정치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는데다 몇 년째 노환으로 몸져 누운 시아버지까지 모셔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더군요. 이런 상황이니 10년 가까이 지났어도 우리말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겠지요. 그녀는 자신이 영화를 만들며, 또 만들고 나서 자신의 속마음을 열어보이고 그것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면서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외롭고 힘든 머나먼 타국의 결혼 생활에서 이번 경험은 그녀에게 아마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소통하는 영화 본연의 존재 의의와 기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서울 여성영화제 기간 중인 4월 9일 신촌 아트레온4관에서 오후 2시부터 이들의 단편영화 9편이 상영되고 이주여성들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문화원 관계자 분들에게서 들은 이주 여성들에 대한 얘기는 현실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주 여성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생활을 위해 한글 교실과 우리 전통 문화 등을 가르치고 상담프로그램까지 운영하지만 일단 살림하느라 바빠서 참석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무척 높다고 합니다. 배우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라도 와야 같은 나라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모국어로 맘껏 수다를 떨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남편들이 대부분 노총각들인지라 이들 부부에게는 2세 출산이 가장 급선무여서 결혼하자마자 아기를 가져서 낳고 기르기에 바빠 문화원에 나오기가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결혼 이민을 신청하고 진행할 때 우리가 북한 방문할 때 방북 교육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것 처럼 이들에게도 우리 정부 차원에서 간단하게나마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영화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주 여성들,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말과 글, 전통문화를 가르쳐 주는 정착 초기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이주 여성들이 시집온 가정은 한국 여자들이 시집오기 꺼려하는 0순위로, 연로한 시부모에 나이 많은 남편인데다 농촌 소득이 뻔하기 때문에 이들이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할 수 없고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데 고작 식당이나 힘든 3D 업종 뿐으로 이런 곳으로 진출하면 가정이 파탄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특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들은 다른 나라 출신들과 달리 학력이 무척 낮은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베트남도 급속한 개방 정책으로 도시 출신 고학력자들을 신부감으로 구하기는 어렵고 산간벽지 무학 내지는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시골 출신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신부감을 고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심지어는 결혼이 무엇인지, 부부 생활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하얀 백지같은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주 여성들과 한국 남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성장 과정에서도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혼혈인에 대한 심한 차별의식도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영화 한 편이 말 한마디 통하지 않고 낯선 타국 땅에 시집온 이들을 깔깔거리게 만들며 지친 영혼을 잠시나마 위로하는 모습 위로 지난달 11일 여수 외국인 수용소 화재 참사 사건이 겹쳐졌습니다. 우리가 필요해 불러 월급도 제대로 안주면서 부려먹고 다쳐도 치료도 안해주고 밀린 월급 받겠다고 불법 체류자의 위험한 신분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인간 사냥하듯이 잡아다가 미비한 시설에 콩나물 시루처럼 가둬놓았다가 끔찍한 화마의 참사로 저 세상으로 보내버린 대한민국의 모습 말입니다. (왜 이곳에 결혼 이주 여성 특히 베트남 출신이 많은가 하는 가장 궁금한 질문에 문화원 관계자분 답변 : '여기가 시골인데 공단과 항구가 들어서서 인구가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고 있어요.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결혼 못한 남자들 많고...5년전쯤 베트남 여성하고 결혼한 노총간 한분이 직접 베트남 처녀 결혼 알선 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주 잘 돼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