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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명칭의 역사 게시판 상세보기

[부여문화원] - 역사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부여 명칭의 역사
작성자 부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876
첨부  
 

본래 백제의 소부리 또는 사비군으로, 제26대 성왕16년 웅진에 

서 이곳으로 와 도읍을 정하고 남부여라 하였는데, 제31대 의자 
왕 20년 신라에 점령되었으며, 신라 제30대 문무왕 12년에 총관 
을 두었다가 제35대 경덕왕 때 부여로 고쳐서 군이 되었으며, 고 
려 제8대 현종 9년 공주에 붙였으며, 제19대 명종 2년에 감무를 
두었으며, 조선 제3대 태종 13년 개혁에 따라 부여현이 되었다 
가 제26대 고종 32년에 군이 되어 현내, 대방, 초촌, 몽도, 도 
성, 공동, 방생 가좌, 천을 송당의 10개면을 관할하였는데, 1914 
년 3월 1일 부군 폐합에 따라 도성면의 구룡리와 공동면의 금강 
리를 떼어 청양군에 넘겨주고, 임천군 읍내, 지서, 초신, 인세, 
성백, 남내, 북박, 팔가, 홍상, 대적의 10개면과 홍산군의 군 
내, 대야, 하서, 상서, 해안, 상동, 내산, 남면, 외산의 9개면 
과 석성군의 현내, 증산, 북면, 비당, 우곤 등 5개면의 각 일부 
와 노성군의 소사면의 일부와 공주군의 반탄, 곡화천의 2개면 
각 일부와 한산군의 하북, 동상 2개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부 
여군이라 하고 홍산, 옥산, 구룡, 내산, 외산, 남면, 임천, 세 
도, 장암, 충화, 양화, 현내, 초촌, 은산, 규암, 석성의 16개 
면, 191개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17년 4월 1일에 현내면을 부 
여면으로 고치고, 1960년 1월 1일 법령 제 537호에 의하여 부여 
면을 읍으로 승격하여 현재 1읍 15면 191리가 되었고, 1973년 7 
월 1일 대통령령 제 6542호로 석성면 현북리를 부여읍에, 장 

암면 사산리를 세도면에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