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연산 백중놀이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민속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연산 백중놀이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214
첨부 jpg 0705d_4.jpg
[놀이의 유래]

음력 7월 15일은 "백종일", "백종절", "백중일 또는 망혼일"이라
고 한다.
이날 절에서는 스님들이 새로 나온 백가지 곡식과 과일등을 차려
놓고 재를 올려 부처에게 공양한다.신라와 고구려때는 우란분회
라 하여 속인들도 공양을 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와서는 주로
승려들이 해왔다.

이 행사는 보름달이 뜬 달밤에 과일, 채소, 술, 밥 등을 차려놓
고 혼을 부르는 것으로 망혼일 이라고도 부른다. 백종날에는 머
슴이나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하며 주인집에서는 머슴들에게 새로
운 옷한벌과 돈을 주는데 이 돈을 백종돈이라 한다.

농촌에서는 백종일을 전후해서 장이 서는데 이장을 "백종장"이
라 하고 마을이나 백종장에서는 씨름판 등 각종 민속놀이도 펼쳐
지고 흥행단도 몰려들어 머슴들은 백종돈을 가지고 백종장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한
다.

연산 백중놀이는 이때에 하던 놀이로 두마면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는 내용이
다양하고 다른 지방의 백중놀이와 달라서 향토사적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놀이이다.

조선조 성종때 부터 좌의정을 지낸 서석 김국광의 업적을 기리
기 위해 왕대리와 인근 27개 동리사람들이 농사일이 거의 끝나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일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후 인근 두계
천변에 모여 난장판을 벌리고 한마당 축제로 벌였던 민속놀이다.

이후 광산 김씨들이 연산일대로 이주 거주하면서 부터는 백중일
에 연산장터에 모여 백중놀이를 벌렸고 한창 성행할 때에는 전국
의 한량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민속 축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왕대리는 김국광의 마을이라 해서 좌상 마을이라 하여 용기가 있
었으며 각 마을마다 두레조직의 우두 머리격인 좌상들의 인솔하
에 모여 각종 제의식을 마치고 효자 효부에 대한 표창과 불효자
에 대한 벌을 논했으며 그해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선발하여 푸
짐한 상을 주기도 하였다.

경비는 광산김씨 집안에서 부담했다 하며 백중놀이가 끝나고 나
면 광산김씨 집에는 된장 등 부식물이 바닥이 났다하니 놀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연산 백중놀이는 일제시에도 계속되어 오다가 1942년을 마지막으
로 중단되었다.
당시 1942년 총좌상이던 김창수씨는 사망하였지만 전수자로서 유
일하게 김복수씨가 생존해 있어 47년만인 1989년 연산면 고양
리, 표정리, 관동리, 백석리 주민들에 의해 발굴 재현하여 제3
회 놀뫼 향토제에서 시연하였으며 1990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
31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종합 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받게 되었다.


[연산 백중놀이의 내용]

논산시 두마면 왕대1리 총좌상을 비롯하여 왕대2리, 두계1리, 두
계2리, 입암 4개 동리에서 지역 좌상 1명씩이 인솔하여 음력 7
월 15일 백중일에 동리 표시기, 영기, 용기, 농기, 오방기, 장나
팔, 태평소 등의 순서로 하여 총좌상의 동리인 왕대리에 집결한
다.

이때 기수와 풍장군들은 전립을 쓰고 농악을 치며, 농군들은 호
미, 삽, 낫 등의 농기구를 휴대하고 동리마다 짚 3단씩을 지게
에 짊어지고 청황등을 들며 아낙네들은 농신제에 쓰여질 떡과 제
물을 들고 각 지역 좌상들을 따라 간다.

총좌상기는 쌍용이 그려져 있고 지역좌상기는 한마리 용이 그려
져 있는데 지역좌상기는 총좌상기인 쌍용기 앞에 동리별로 정열
한다.
지역 용기는 공원의 구령에 따라 순서대로 쌍용기에 두번씩 절
을 한다.
쌍용기는 상견례의 답례로서 지역 용기 장목에다 백색의 긴 수건
을 달아준다.

이와같이 상견례 의식이 끝나면 신장대 모양으로 만든 농신대에
다 오곡 주머닐 4개를 묶고 집단을 한데 모아 세우고 외약 새끼
줄로 묶은 다음 집둥체의 상 중앙에 농신대를 꽂는다.
이때 아낙네들은 준비한 제물로 제상을 차려 놓는다.쌍용기를 비
롯한 각종 기를 병풍식으로 둘러 세우고 지역 좌상들이 제관이
되어 축문을 낭독하여 농신제를 지낸다. 농신제 의식이 끝나면
농신대에 다 불을 질러 태우는데 이것은 액운을 소멸시킨다는 것
이다. 이때 액운풀이 농악을 치고 액맥이 굿을 벌리는데 선소리
와 뒷소리는 다음과 같다.

액맥이 굿
[선소리] 비나이다 비나이다 ∼ 천신께 비나이다 지신
께 비나이다 ∼ 연산골 비나이다
관동이 비나이다 ∼ 고양이 비나이다 표정이 비나이
다 ∼ 백석이 비나이다

[뒷소리] 얼 럴 럴 상 사 뒤 여

액맥이 굿이 끝나면 불효자에 대한 벌을 주는데 불효자를 쌍용기
에 묶어 징벌한다. 이어서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머슴을 동
리별로 한 사람씩 선발하여 총좌상은 상품으로 백미 7말씩을 주
고 선발된 머슴들을 소등에 태운다. 이때 소가 없으면 농군들이
기마전식으로 어깨에 태워 선소리군의 소리에 따라 농요를 부르
는데 농군들과 아낙네들은 장단에 맞추어 호미, 삽, 낫, 지게춤
등을 추며 머슴놀이가 진행된다.

머슴놀이
[선소리] 계룡산 명기받아∼연산골이 생겼도다
황 산 성 명기받아 ∼ 관 동 이 생겼도다.
괭 이 봉 명기받아 ∼ 고 양 이 생겼도다.
함 지 봉 명기받아 ∼ 표 정 이 생겼도다.
음 달 봉 명기받아 ∼ 백 석 이 생겼도다.
1년이라 열 두 달 ∼ 윤달들면 열 세 달
연 년 이 풍년들고 ∼ 우리골도 풍년들고
7월이라 백중날은 ∼ 우리들의 멸정일세
조상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머슴살이 슬퍼말라 ∼ 부귀영화 안부럽다.
우리골에 세세연풍 ∼ 들판에도 황금풍년
밭골에도 오곡풍년 ∼ 동리사람 인심풍년
[뒷소리] 얼 럴 럴 상 사 뒤 여

머슴놀이가 한창 진행되면 이것을 구경하던 양반들이 흥에 못이
겨 놀이에 뛰어들어 양반춤이 시작되는데 이때 머슴놀이는 중단
하고 풍장군들은 양반춤에 장단을 쳐준다.
양반춤이 끝나게 되면 농악놀이가 시작되는데 용기놀이, 쩍지기
굿, 칠채굿, 청·황 등놀이, 두레굿, 오방진굿 등을 치면서 200여
명의 농군들은 함성과 함께 화합을 다짐하면서 백중놀이는 끝이
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