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강청리(江淸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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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8 | 조회 | 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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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군 상두면의 지역이었다. 왕암천 냇물 주변에 있는 마을인
데 예부터 냇가에 돌이 많아 내가 항시 말라 있어 간천(幹川)이 라 불러오다가 변하여 강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종리(飛宗里)와 두계리(杜溪 里), 원곡리(元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강청리라 하고 가야 곡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강청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42세대에 530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간천, 강청이, 날마루, 독점, 비종리, 외강청, 옷텃골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진개[들] : 불탄다리 남쪽에 있는 들로 옛날 이곳에 개가 있었 다고 한다. 간천(幹川)[마을] : 강청리라고도 하며 내에 돌이 많아 항시 말 라있어 간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강청이[마을] : 강청리라고도 한다. 날마루[마을] : 강청이 동남쪽 산날동에 있는 마을로 빗마루 또 는 비종리라고도 한다. 독점[마을] : 날마루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두계리라고도 하며 옛날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두계리[마을] : 날마루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독점이라고도 한 다. 바구리산[산] : 독점 뒤에 있는 산인데 모양이 마치 바구니처럼 생겼다하여 바구리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이 근처의 흙 이 그릇 굽는데 좋은 흙이라고 한다. 바깥강청이[마을] : 강청이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외강청이라고 도 부른다. 밤준논[논] : 빈마루 앞에 있는 논으로 네마지기 정도 되는데 옛 날 어느 사람이 말한 사발을 얻어먹고 그 고마움에 은혜를 갚기 위해 다음에 찾아와서 이논을 사주었다고 한다. 불탄다리[다리] : 바깥 강청이 동쪽 큰 길가에 있던 다리로 다리 가 썩지 않게 불에 그을러서 놓았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식 다 리로 되어 있다. 비종리[마을] : 강청이 동남쪽 산날등에 있는 마을로 빗마루 또 는 날마루라고도 한다. 빗마루[마을] : 강청이 동남쪽 산날동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아 주 못사는 마을이어서 빗쟁이 마을이라 해서 빗마루라 불렀다 하 는데 지금은 부촌이 되었다. 날마루, 비종리, 빈마루라고도 부른 다. 오야밋들[들] : 빈마루 서북쪽에 있는 들로 오야리라고도 한다. 외강청(外江淸)[마을] : 강청이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바깥강청 이라고도 한다. 웃텃골[마을] : 독점 위쪽에 새로된 마을이다. 허구배미[논] : 오야밋들에 있는 논으로 7마지기가 되는데 어떤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하룻밤을 묵고가게 한데 고마움의 뜻으로 사준 논이라 한다. ▶황치마산 가야곡면 강청리에 황치마산이 있다. 옛날 이마을에 황씨와 천 씨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매일 싸움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던 어 느해의 일이다. 황씨와 천씨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한참 싸우다 가 황씨들이 몰려 산으로 피신하였다. 산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황씨네 아낙네들은 치마에 돌을 날러다 주었다. 이와 같은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모두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산 위에 서 황씨네 아낙네들이 치마에 돌을 날러다 주었다. 이와같은 싸 움이 벌어지는 동안 모두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 산위에서 황씨 네 아낙네들이 치마에 돌을 날러다 주었다하여「황씨들의 치마 산」이라 부르다가「황치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가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