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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곡리(六谷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육곡리(六谷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9 조회 949
첨부  
 
백제때에 덕은(德恩)이란 고을이 있었던 곳으로 태봉산을 등지
고 뻗어 내려온 야산에 낮은 골짜기가 6개 있는데 그 골짜기를
큰골, 작은골, 서풍골, 육골, 지청골, 참나무골이라 하여 6곡이
라 부르게 되었다.

이조 제3대 태종(太宗)때 은진(恩津)으로 병합하였다. 1914년
하두면의 야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육곡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
입되었다. 인조때 병조판서를 지낸 서필원(徐必遠)의 호가 육곡
(六谷)이라 함은 여기서 자랐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은 육곡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232세대에 749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담안,
덕은골, 샘위, 서봉곡, 여수울, 행정 등이 있고 현재 가야곡면
소재지이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마골[골] : 덕은골 위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명당자리가 있어
위대한 인물이 나오면 여기서 가마에 오르게 된다하여 가마골이
라 부른다 한다.
가야골[골] : 육곡 남쪽 산기슭에 있는 골짜기인데 옛날 관청이
있었다고 한다.
감바우[바위] : 육곡 남쪽 육군 제2훈련소 쪽에 있는 큰 바위이
다.
곳집재[들] : 덕은골 남쪽에 있는 들로서 백제때 여기에서 식량
이 많이 나와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흉년이 들어 굶어죽지
않으려면 집이 있고 재물이 있는 곳집재를 찾아가라고 해서 곳집
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석댕이[골] : 독선거리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금지[골] : 태봉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옛날 이곳에서 금이
나왔다고 한다.
기아골[골] : 춘두편덕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기와점이 있었
다 한다.
단두릿재[고개] : 여수울 동북쪽에 담과 같이 둘러 있는 낮은 산
이다. 옛날 사냥꾼들이 이곳에서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를 만나
면 몸을 숨겼다는 큰 소나무 두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
나무 위에 올라가면 단둘이는 숨을 수 있는 재라하여 단두릿재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담안[마을] : 덕은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담안쪽에 있는 마을이
라 해서 담안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덕은골[마을] : 행정앞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백제때 덕은골의
중심지로 가장 번창했던 마을로 덕은고을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
여 덕은골이라 불리운다.
독선거리[길] : 선돌이 있는 거리이다.
돈구불[들] : 덕은골 남쪽에 있는 들인데 옛날 여기에서 돈을 만
든 곳이라 하여 돈구불이라 부른다 한다.
말무덤[묘] : 태봉산 위에 있는 큰 무덤이다.
매봉산[산] : 태봉산 북쪽에 있는 산인데 모양이 마치 매와 같
이 영특하게 생겼다고 한다.
가령구렁[들] : 여수울 동북쪽 단두릿재 골에 있는 들이다.
샘위[마을] : 행정 위쪽에 있는 마을로 위치가 높이 있어 우물
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아래뜸 샘물을 길어다가 먹었다 한
다. 그래서 샘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샘위 또는 천상이라 부르
게 되었다고 한다.
서봉곡(西鳳谷)[마을] : 천상 위쪽에 있는 마을로 선푼골이라고
도 한다. 이 마을에 큰 바위가 있는데 모양이 마치 짐승과 같이
생겼으나 서쪽에서 불어오는 봉황의 계곡이란 풍수설과 함께 좋
은 일이 많이 생기는 곳이라 하여 서봉곡이라 부른다 한다.
서봉암(西鳳岩)[바위] : 서봉곡에 있는 큰 바위로 길이 50m, 높
이 20m되는데 작은 바위에 피어져 있고 모양이 짐승과 같이 생겼
다.
서푼골[마을] : 서봉곡이라고도 하는데 천상위쪽에 있는 마을이
다.
선돌[돌] : 육곡입구에 있는 돌로 높이가 3척 가량인데 하나는
길가에 있고, 하나는 논뚝에 서있다.
구리미재[고개] : 여수울에서 은진면 황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여수물[마을] : 옛날 부여 서씨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여기 토지
는 모두 부여 서씨의 토지로 도조를 바쳤다하여 여수물골이라 부
르던 것이 변하여 여수물 또는 여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
다.
영암사(靈岩寺)[절] : 서봉아 위에 있는 절이다.
옥터거리[거리] : 옛날 덕은군의 옥이 있었던 독선거리 서쪽에
있는 길거리이다.
응봉(鷹峯)[산] : 태봉산 북쪽에 있는 산으로 매봉이라고도 한
다.
장구마루[들] : 단두릿재 서쪽에 있는 들이다.
장구샘[우물] : 장구마루에 있는 우물이다.
정자들[들] : 장구마루 끝에 있는 들로 버드나무 정자가 있었다
한다.
지청골[골] : 황치마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천상(泉上)[마을] : 행정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샘위라고도 부른
다.
충두편덕[버덩] : 육곡 남쪽 산기슭에 있는 버덩이다.
태봉산(胎峯山)[산] : 육곡리와 양촌리, 왕암리 경계에 있는 산
으로 높이가 294m로 옛날 왕의 태(胎)를 묻었다고 한다.
팔매바위[바위] : 매봉산 기슭에 있는 둥근 바위로 나무꾼들이
돌을 던져서 돌이 바위위에 놓이게 되면 운수가 좋다하여 자주
돌을 던졌다 한다.
행정(杏亭)[마을] : 큰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행정이
라 부른다.
황충논[논] : 선돌 가운데에 있는 논이다.

▶덕은골과 부여서씨

옛날 백제때부터 서씨 중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
이 있었다. 백제말엽이다. 백제가 망하게 될 것을 미리 예측한
서씨중의 한 사람이 백제가 망하면 덕은 고을에 자리잡고 살려
고 하였다.
결국 백제의 계백장군은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최후 결전을 벌
여 5천결사대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고 백제는 비참하게 무너졌
다. 이리하여 부여 서씨들은 여기 덕은 고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
었다고 한다.

▶지청구리 지청골

가야곡면 육곡리 황치마산 서북쪽 골짜기에 지청골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임진왜란때의 일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왜적들이 이 마을에 온
다는 소식을 듣고 황치마산 서북쪽 골짜기로 숨어들어 갔다. 얼
마후 마을에 나타난 왜적들은 마을에 사람이 없자 황차마산을 수
색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는 주로 이 근처에 많이 살던 황씨들
이 피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를 지나가던 왜적 하나가 치마
를 넣어 둔 곳을 발견하고
「여기, 사람이 있다.」
하며 큰 소리로 외치자 왜적들은 새까맣게 몰려 들었다. 조용하
기만 했던 산골짜기는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고, 모두 학살당하
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마를 넣어두었던 곳을 계속 지청
구하여「지청구리」라 하였고, 또「지청고을」이라 부르다가 변
하여「지청골」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