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갈산리(葛山里) | ||||
---|---|---|---|---|---|
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820 |
첨부 | |||||
노성군(魯城郡) 광석면(光石面)의 지역으로 마을 앞 넓은 들에
서는 쌀이 나오고 산에서는 칙이 많이 나온다 하여 갈미(葛米) 또는 갈산(葛山)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은동리(銀洞里), 입석리(立石里) 의 각 일부와 득윤면(得尹面)의 상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갈산리 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갈산1, 2리로 되어 있으며 158세대에 549명의 주민 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갈미, 큰동내, 날근터, 도래뜸, 산정말, 은동골, 쟁미턱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갈미(葛米)[마을] : 갈산리를 말하며 마을 앞 광석들에서는 비옥 해서 쌀이 많이 나오고 마을 주위에 있는 산세거는 칙이 많이 나 온다 하여 갈미 또는 갈산이라 부른다 한다. 갈산(葛山)[산] : 칙이 많이 나오는 묘한 산이 있다라여 갈산 또 는 갈산리라 부른다. 큰동내[마을] : 갈산1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날근터[마을] : 갈산1리 지역으로 갈미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마을은 옛날에는 부유한 마을이었는데 점점 쇠퇴해져가 차츰 낡아진다 해서「날근터」라 부른다 한다. 도래뜸[마을] : 갈산1리에 도래뜸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산정말[마을] : 갈산2리로 산직말이라고도 하는데 갈미 북서쪽 에 있다. 옛날 마을 뒷산에 정자(亭子)가 있어 산정말이라 했다 고 한다. 산직말(山直)[마을] : 갈미 북서쪽에 있는 외딴마을로 산직말이 라고 부르다가 뒷산에 정자가 서자 산정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마을 옆에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의 묘소가 있다. 쌍군송[나무] : 갈산리 노인회관앞 묘앞에 있는 두그루의 소나무 로 효종6년에 왕명에 의해 수원에서 채취 묘전표송두그루를 심 게 하였다. 묘소의 주인공은 권육이란 선비이다. 새뜸[마을] : 갈산2리로 큰동네와 산정말 사이에 있는 마을 윤동(尹洞)[마을] : 갈산1리로 파평윤씨(坡平尹氏)들이 많이 살 던 마을이라 하여 윤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은동 또는 은동 골, 웅덩골이라고도 부른다 한다. 윤석호묘소(尹石湖墓所)[묘] : 산직말 뒤에 있는 묘소로 석로 윤 문거는 팔송 윤황(尹惶)의 아들이며 우계 성혼(成渾)의 외손으 로 인조8년에 생원, 진사 양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正言)으 로 일하였다. 그후 청나라의 굴욕이후 관직에 나가지 말라는 아 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향에 내려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현종13 년 67세로 세상을 떠나니 현종대왕이 애석하게 여겨 초상때의 제 물과 인부를 보내주시고 이조판서에 증직 하였다. 은동(銀洞)[마을] : 갈미 북쪽에 있는 마을로 윤동 또는 은동골 은동리라고도 한다. 은동골[마을] : 갈산1리로 갈미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갈 미산에 굴이 있어서 물이 계속 흘렀고 많은 짐승이 사는 웅덩이 라하여 웅덩골이라 부르던 것이 파평윤씨들이 많이 살아 윤동이 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은동골, 은동, 은동리라고도 부른다. 쟁미턱[마을] : 날근터와 은동골 사이에 쟁미턱이란 마을이 있는 데 옛날에 배턱이 있었다고 한다. 파평윤씨재실(齋室)[유적] : 갈산2리 산정말에 파평윤씨 재실이 있다. 1987년 건립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波)충경공(忠敬公 : 石 湖)종중본부로 사용되기도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