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광리(光里) | ||||
---|---|---|---|---|---|
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757 |
첨부 | |||||
노성군(魯城郡) 광석면(光石面)의 지역으로 넓은 들이 있어서
「너분들」이라 하였고, 훈훈한 인심으로 이 마을에 가면 더운물 과 더운 밥을 준다하여 「더분들」,「더운들」이라 하였다 한 다. 또 넓은 돌이 있다해서 광석(廣石)이 되었고, 이조(李朝)때 에 서당이 많이 생겨 배우는 사람이 많아 마을을 빛냈다하여 마 을 이름을 광리(光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리(內里), 입석리(立石里), 이 사리(梨寺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 다. 행정구역은 광리 1개리로 되어 있으며, 71세대에 245명의 주 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안더분들, 밧 더분들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광석(廣石)[마을] : 넓은 들이 있어서 광석(廣石)이라 하던 것 이 마을에 서당이 생겨 선비들이 많이 모여들어 마을을 빛냈다하 여 광리(光里)라 하였다. 내리(內里)[마을] : 더분들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안더분들 또는 안말, 내리라고 부른다. 냉논[논] : 밧더분들 앞에 들가운데 통메산 밑에 있는 논으로 찬 물이 많이 나온다 하여 냉논이라 부른다. 너분들[마을] : 광리를 너분들이라고도 하는데 넓은 들이 있어 서 너분들이라 부른다 한다. 더분들[마을] : 광리를 더분들 또는 더운들이라고도 한다. 더운들[마을] : 광리를 더분들 또는 더운들이라고도한다. 옛날 큰 가뭄이 있을 때 이곳에는 풍년이 들어 이 마을에 구걸오는 사 람들에게 더운밥과 더운물을 두어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하는데 구걸은 사람들이 이마을처럼 따뜻하게 사람을 대해주는 마을이 없다하여「더운들」또는「더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밧더분들[마을] : 광리 남쪽 광석들 쪽에 있는 마을로 더분들 바 깥쪽에 있다하여 밧더분들이라 부른다. 사라리방죽[못] : 광리 앞 사라리똘에 있었던 방죽으로 경지정리 로 없어졌다. 안더분들[마을] : 광리 즉 더분들 안쪽에 있는 마을로 안더분들 또는 내리, 안말이라고도 한다. 안말[마을] : 안더분들이라고도 하며 내리(內里)라고도 한다. 통메산[산] : 광리 남쪽 밧더분들 앞 들가운데에 있는 작은 산이 다. 이조(李朝)때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 이 여기 앞을 지나다가「통메산」에 와서 뗏집에 몸을 담고 며칠 씩 묶고 갔다 하는데 봇짐을 벼개 삼고 잠자리를 청하였다 해서 통을 메고 자는 산이라하여「통메」라 부른다 한다. 지금은 산 은 없어지고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통메들[들] : 통메산 앞에 있는 들을 통메들이라고 부른다. ▶광리에서 청동기시대의 마제석검등 출토 광석면 광리 179번지 소재 윤여송씨 소유 과수원에서 1988년3월 3일 청동기시대의 마제석검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조선시대 것으 로 추정되는 매장 문화재 7점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매장 문화재는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마제석검,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자기병2점,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 는 불두 1점, 백자 접시 1점 등으로 1988년 11월15일 국고에 귀 속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훈훈한 인정어린 더운들 광석면 광리를「너분들」,「더분들」,「더운들」이라고 부른다. 옛날 어느해의 일이다. 큰 가뭄이 들어 곡식들은 타들어 갔다. 어찌나 가뭄이 심하였던지 들판에는 곡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 을 정도로 지독한 가뭄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물이 많아 가뭄을 모르고 지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 걱정없이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 때 거지들이 이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어느집을 가보아도 얼굴하나 찌푸리지 않고 더운밥에 더운물을 주어 찾아오는 걸인 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이 마을의 훈훈한 인심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굶주림에 시달 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들어왔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따뜻한 이 마을의 인심에 감동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마을에 찾아왔던 사람들은 이 마을 사람들처럼 따뜻 하게 대해주는 마을이 없다하여 이 마을을「더운들」또는「더분 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