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득윤리(得尹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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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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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군(魯城郡) 득윤면(得尹面)의 지역으로 옛날 등수소(登水
所)가 있었다. 옛날 파평윤씨 중의 한 사람이 이 마을로 이사해 와 덕을 많이 쌓으며 살아가 선행을 많이 하는 윤씨를 얻은 마을 이라 하여 득윤리(得尹里)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윤리(尹里), 중리(中里), 지동(止 洞)의 각 일부와 광석면의 갈산리(葛山里) 일부, 석성군(石城 郡) 원북면(院北面) 음상리(陰上里), 갈산리(葛山里)의 각 일부 를 병합하여 다시 득윤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득윤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266세대에 93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섬 말, 돌패기, 동아시, 등수소, 방죽안, 북아시, 용산절, 저너머, 지울, 행랑골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높은정갱이고개[고개] : 득윤2리 섬말 남동쪽에 있는 고개인데 근처에서는 가장 높은 고개로 논산에서 부여로 통하는 큰 길이 다. 백제가 신라와의 싸움에서 패망한 후 백제의 부흥군들이 신 라군을 괴롭혔던 지역으로 높은 곳에 있는 고개라 하여「높은정 갱이고개」라 부른다. 당재산[산] : 득윤1리 뒤에 있는 산으로 옛날 부녀자들이 여기에 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도리(島里)[마을] : 득윤2리로 마을이 마치 섬처럼되어 있다 하 여 섬말 또는 도리(島里), 도촌(島村)이라고도 부른다. 도촌(島村)[마을] : 섬말을 도촌이라고도 부른다. 돌쩍고랑이[골] : 말무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돌패기[마을] : 득윤1이로 북아시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돌이 많 이 박혀 있으며 하천의 징검다리를 놓을 때 이곳에서 들을 파내 다가 돌다리를 놓았다하는데 돌을 많이 파내는 마을이라 해서 「돌패기」부른다 한다. 풍수지리에서 이 마을은 자라의 형국으 로 마치 자라가 득윤리로 물먹으러 들어오는 형국이라 한다. 동아시[마을] : 지울 동쪽에 있는 마을로 득윤1리에 속해 있다. 옛날엔 큰 길가에 있었던 마을로 한집 두집 늘어남으로써 마을 이 되어 동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동아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 다. 두무다리[다리] : 윤북창 아래쪽에 있는 돌다리이다. 등수소(登水所)[마을] : 득윤리를 등수소라고도 부른다. 말무덤[묘] : 높은정갱이 고개 즉 논산에서 부여로 향하는 국도 옆에 있는 큰 무덤으로 옛날에는 둘이 있었는데 국도를 낼 때 하 나는 파버리고 하나만 남아 있다. 맞무덤 또는 맹무덤이라고도 부른다. 맞무덤[묘] : 말무덤 또는 맹무덤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큰 무덤 이 둘이 있어서 마주보고 있었다 하여 맞무덤이라고 부른다. 맥무덤[묘] : 중리에서 득윤리 입구 공동묘지에 있는 큰 무덤으 로 혈 즉 맥을 끊어 쌓아논 무덤이라 하여 맥무덤이라고 부른다. 맹무덤[묘] : 말무덤 또는 맞무덤이라고도 하는데 빈무덤이라 하 여 맹무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방아다릿들[들] : 화산밑에 있는 들로 마치 모양이 방아의 다리 처럼 생겼다하여「방아다리」또는「방아다릿들」이라도 부른다. 방죽안[마을] : 득윤3리 용산절 앞에 있는 방죽이 있었고 그안 에 마을이 있다하여 방죽안 또는 방축리(방축리)라고도 부른다. 북아시[마을] : 득윤1리에 속해 있으며 지울 북쪽에 있는 마을이 다. 새논[논] : 돌패기 서쪽 옥논 옆에 있는 논이다. 섬말[마을] : 득윤2리로 지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석성천 옆에 있어 마치 섬처럼 되어 있다하여 섬말 또는 도리(島里), 도촌(島 村)이라 부른다. 소정이[산] : 옥논 뒤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36m로 옛날에는 솔 이 무성했다고 한다. 양판골[골] : 말무덤 동쪽 윤북창 위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요강다리[다리] : 지울 앞에 있는 다리로 옛날엔 넓이가 3자, 길 이가 12자 되는 긴돌, 두쪽을 놓아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옛날엔 부여군 초촌을 향하 는 큰 길이었다 하며 지금도 지적도에 6자 길이 빠져 있다고 한 다. 용골[골] : 소정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용산절[마을] : 북아시 남쪽에 있는 마을로 득윤3리에 속해 있으 며 옛날에 용산절 마을 서쪽 끝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윤북창[골] : 말무덤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저너머[마을] : 득윤리로 묵아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울[마을] : 득윤2리로 득윤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동(止 洞)이라고도 한다. 천방잇들[들] : 용골 옆에 있는 들 화산(花山)[산] : 섬말 뒤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38m로 흙빗이 붉고 산세가 수려하므로 꽃과 같이 아름답다 하여 화산이라 부른 다 한다. 행랑골[마을] : 득윤2리로 옛날엔 이 마을 앞에 길이 있어 행인 들이 유숙하는 숙박소와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농사를 짓지 않 고 주막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행랑골이라 부른다. ▶덕을 쌓으며 살아간 득윤리의 윤씨 옛날 파평 윤씨중의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난 이 마을로 이사하 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성품이 아주고와서 남의 일 도와주는 것을 제일처럼 하며 덕을 많이 쌓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양가집 규수와 장가를 들었는데 그의 처가엔 아들이 없었 다. 그래서 장인은 묘자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지금 의 광석땅에 명당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명당 자리는 우대(牛 台)형으로 꼭 소가 드러누워 있는 것 같은 태평성대의 형국이었 다. 장인은 이곳에 묘를 쓰면 후손중에 훌륭한 이물이 나올 것이 라 생각하고 묘자리를 보아 두었다. 그후 장인은 남에게 덕을 베풀며 살아가는 사위에게 그 명당 자 리를 양보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여기에 윤씨의 묘를 쓴 후부터 그 집안엔 이름난 인물이 대를 이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서 이 마을은 덕을 쌓고 살던 윤씨를 얻은 마을이라 하여 득윤리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득윤리의 맥무덤 임진왜란때 왜적들이 쳐들어와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원군을 청 했다. 명나라의 이여송은 우리나라의 산세를 보고 놀라면서 이대 로 두었다가는 산세를 타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와 자기나라 도 위태로울 것이라 생각하고는 풍수지리가들을 데리고 들어와 전국을 다니면서 산세의 맥 즉 혈을 끊고 다녔다. 이여송이가 지금의 득윤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풍수지리가 들 이 득윤리의 산세를 보고 명당자리라 하자 당장 맥을 끊어 버리 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득윤리의 명당자리는 맥이 끊기 에 되었고 그때 맥을 끊어 쌓아 놓은 흙이 마치 무덤처럼 되어 맥무덤이라 부른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