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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전리(旺田里)-1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왕전리(旺田里)-1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9 조회 942
첨부  
 
노성군(魯城郡) 천동면(泉洞面)의 지역으로 고려 태조 왕건(王
建)이 후백제의 견훤군과 격전을 벌릴 때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철관(鐵冠)을 쓰고, 바다에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요란한 꿈을 꾸고 지금의
부인리에서 살던 무당에게 해몽을 들으니 서까래 세 개를 짊어
진 것은 임금왕자(王)요, 철관을 쓰고 바다에 들어간 것은 용상
(龍床)에 앉을 것이요, 닭의 울음소리는 고고위(高高位)로 가장
높은 것이요, 수만집의 방망이 소리는 등극을 알리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후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후 꿈해몽을 해
준 무당에게 밭을 상으로 주었는데 이밭을 왕밭 또는 왕전(王田)
이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척리(大尺里), 소중리(小中里)
의 각 일부와 두사면(豆寺面)의 마무리(馬頭里), 항월리(恒月里)
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왕전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
다.

행정구역은 왕전1, 2, 3리로 되어 있으며 269세대에 954명의 주
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현재) 자연부락은 더더기, 마
두, 왕밭, 장자못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는샘[우물] : 왕전1리 왕밭 마을앞에 있는 우물로 바가지로 물
을 펴낼 수 있는 샘인데 여름에는 어름처럼 차가웁고 겨울에는
물이 따뜻하다. 노승, 장군과의 전설이 얽힌 우물이기도 하다.
대척(大尺)[마을] : 왕전2리 장자못을 대척이라고도 불렀다.
더더기[마을] : 왕전1리로 왕밭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독산(獨山)[산] : 왕전2리 장호에 있는 산인데 들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앞에는 장자못이 있고 돌이 박혀 있는 돌산이다.
마두(馬頭)[마을] : 왕전3리를 말머리 또는 마두라고 한다. 왕
밭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서쪽에 있는 산형태가 말의 머
리처럼 닮아서 마두라고 했다고도 하며, 호남 지방의 어느 선비
가 이곳에서 말을 타고 한양에 가서 과거에 급제했는데 말머리
가 나타난곳이라 하며 말머리라 했다는 전설도 있다.
마무리(馬頭里)[마을] : 왕전3리 말머리를 마무리라고도 한다.
말구렁이[길] : 왕밭 북쪽에 있는 길로 국도에서 항월리 쪽으로
넘어다는 길인데 이여송이가 풍수지리에 이산에 명당자리가 있다
하여 맥 즉 혈을 끊은 것이 큰 구렁이 생겨 길이 되었다 하며 말
구렁이라 부른다.
말구렁이고개[고개] : 왕밭 북쪽 국도에서 항월리로 넘어가는 고
개이다.
말머리[마을] : 왕전3리 마두를 말머리라고도 한다.
양세층신문[고적] : 박이현(朴而絢)과 박영서(朴永緖) 부자의 충
성을 길이 빛내기 위해 마두에 세운 충신문이다.
왕밭[마을] : 왕전1리를 왕밭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꿈 해몽을 잘해주어 후삼국 통일에 공이큰
무당에게 밭을 상으로 주었는데 그밭이 왕전1리로 왕이준 밭이라
고 하여 왕밭 또는 왕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왕전(王田)[마을] : 왕전리를 말하며 왕밭이라고도 부른다.
잔디말고개[고개] : 왕밭 북쪽에 있는 고개로 잔디가 많이 있었
다고 한다.
자디말랭이[고개] : 왕밭 북쪽에 있는 잔디말고개를 말한다.
장자못[마을] : 왕밭 남쪽에 있고 천동리 소척 앞 들가운데에 있
는 마을로 왕전2리이다. 마을에 못이 있고 옛날에는 큰 장자가
살았다고 하며 장자지(長者池), 장호, 대척이라고도 부른다.
장자못[못] : 왕전2리 장호에 있는 큰 못으로 돌산이었는데 1931
년부터 1933년까지 논산하천 공사시 돌을 떠내어 못이 생겼는데
이못을 장자못이라고 하며, 장호(長湖)라고도 부른다.
장자들[들] : 장자못 근처에 있는 들을 장자들 또는 장잣들이라
고 부른다.
장호(長湖)[마을] : 왕전2리를 장자못 또는 장호라 한다.
장호[못] : 장자못을 장호라고도 부른다.
청룡끝[산] : 왕밭 남쪽에 있는 날등끝을「청룡끝」또는「청룡」
끝이라고도 부른다.
통미[산] : 왕전2리 장호에 있는 독산을 통미라고도 부른다.

▶용머리 형국의 장자못

왕전2리 장호부락은 풍수지리학상 용머리 형국이라고 한다. 옛
날에는 천동리에서 장호까지 날등이 이어져 있었다고 하며 장호
는 용의 머리부분으로 돌(돌산)이 박혀 있다고 한다.
그후 논산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가 뚫리고, 경지정리로 배수
로가 생디가 보니 용의 혈은 목부분이 잘린채 장호는 마치 섬모
형의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의 혈을 끊었기 때문에 장자는 없어지고 못
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앞을 내다보고 이름지은 장자못

왕전2리를 장자못 또는 장호라고 부른다. 옛날 이마을에는 수천
석을 하던 장자가 살았다고 하며, 마을에 돌산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돌산은 1931년 착공하여 1933년 준공된 논산천 제방
공사시에 이곳 돌산에서 돌을 떠다가 하천 제방을 쌓아 못이 생
기기 시작하였다. 그후 논산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가 비포장
도로일 때 주위 마을 사람들은 이곳 돌산에 와서 돌을 깨어 자갈
을 채취 못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돌산은 못으로
변하였다. 장자못이라는 마을 이름은 못이 생기기 이전부터 불리
어진 이름으로 선조들이 먼 훗날 못이 생길 것을 알고 이름지었
다 하겠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