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려 태조 왕건이 상으로 준 왕밭(왕전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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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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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면 왕전리를 왕밭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 기 위해 황산벌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잠시잠시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그꿈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큰솥을 쓴채 물속으로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 다. 이상히 생각한 왕건은 지금의 부적면 부인리에 있던 무당에 게 꿈해몽을 들으니 “거까래 세 개를 짊어진 것은 임금왕(王)자요, 큰솥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왕관을 쓰고 용좌에 앉는다는것이며, 닭의 울음소리는 고고함으로 높은 것이요, 방망이 소리는 등극이 가까 워졌다는 뜻이요.” 라고 해몽을 해주는 것이었다. 용기를 얻은 왕건은 진영으로 돌아와 진격명령을 내려 후백제군 을 크게 물리치고 후삼국의 대업을 이루게 되었다. 그후 왕건은 이번 싸움의 승리는 꿈해몽을 해준 무당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 고 ‘부인’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밭을 상으로 주었다. 그래서 이곳은 왕이 상으로준 밭이라 하여「왕밭」또는「왕전」이라 부 르게 되었다고 한다. **장호가 왕전리에 소속된 유래 고려 태조 왕건이 꿈해몽을 해준 무당에게 밭을 상으로 떼어주 기 위해 왔을 때는 밤이었다. 밤인지라 범위가 보이질 않아 밭 을 나누어 주기가 어려웠다. 그때 밤이었기 때문에 등불을 들고 있었다. 「이 등불이 보이는 지역은 전부 부인에게 주어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호마을은 들판으로 장애물이 없어 불빛 이 보이는 지역이라 왕밭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