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항월리(恒月里)-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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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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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군(魯城郡) 두사면(豆寺面)의 지역으로 풍수지리에 운중명
월(雲中明月)이란 명당이 있고, 지형이 반달 모양이므로 항월(恒 月)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합정리(合亭 里), 오류동(五柳洞), 서변리(西邊里), 대동리(大洞里)의 각 일 부를 병합하여 항월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항월1, 2, 3, 4리로 되어있으며 213세대에 71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큰골, 망 정, 반월, 서변, 오릿골, 절골, 주막거리, 풋개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군량들[논] : 항월2, 3, 4리 앞에 있는 들로 다른 곳은 토지가 토박하여 한해로 수확이 적으므로 농사가 잘되는 여기에 군량을 심게 하여 군량으로 걷어 갔다하여 이 들판을 군량들이라고 부른 다. 대동(大洞)[마을] : 항월3리로 옛날엔 항월리에서 제일 큰 마을 이라하여 큰골 또는 대동이라 부른다. 오릿골 북쪽에 있는 마을 이다. 두음산[산] : 지금은 원풍산이라 부르며 옛날 이곳에 큰절이 있 었는데 이 산이 시끄러운 소리를 막아주어 이 절에서 불공을 드 리면 효험이 있었다고 하여 두음산이라 부른다. 말구렁이[길] : 왕전리 국도에서 항월리로 넘어가는 길로 옛날 이여송이가 서변산에 명당이 있다하여 명당의 맥을 끊기 위해 서 변산 날등을 파내어 생긴 길로 큰 구렁이처럼 생겼다하여 말구렁 이라 부르며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망정[마을] : 항월2리로 망정이라고도 하는데 서변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망정이[마을] : 항월2리로 망정이라고도 부르며, 오류골의 뜸으 로 옛날엔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큰 정자가 잇어 선비들이 모 여 시조와 휴식을 즐겼던 곳으로 사방을 전망했다해서 망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부시깃들[논] : 항월1리 앞에 있는 풋개들 아래에 있는 논이다. 뱀골[마을] : 항월2리 망정이라고도 하는 마을로 풍수지리에 앞 산이 배의 형국으로 배를 묶어 놓은 형이라 한다. 반월(半月)[마을] : 항월리에 있는 뜸으로 옛날 풍수지리에「운 중명월(雲中明月)」이란 명당이 여기 있었다고 하며 반월(半月) 은 항시 반월이지 온달은 될 수 없다하여 부락의 규모도 크지 못 한다 하며 온달이 될 수 없는 명당자리라 하여 반월이라 부른 다 한다. 서변(西邊)[마을] : 항월4리로 항월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서변 또는 서편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앞에는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있 다. 서변산[산] : 서변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왕전리와 항월리 경계 를 이루고 있다. 열녀문(烈女門)[고적] : 이조말엽 남양홍씨 홍순성의 부인 기계 유가 남편이 오랜 병으로 누워있어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나 사망하자 그녀도 남편을 따라 죽었다. 그녀가 죽은 후 그의 뜻 을 기리기 위해 정려문을 세웠다. 정려문은 기계유씨부인의 열녀 문으로 항월4리 서변에 있다. 영선사(靈仙寺)[절] : 항월리 큰골에 있는 절로 남고현(南高賢) 씨가 지었다고 한다. 오류동(五柳洞)[마을] : 항월2리로 항월리 중앙에 위치하고 있 는 마을로 이 마을에는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의 명당이 있다하 며 유지(柳枝)가 다섯 개의 나무로 되어 있어 유자(柳字)를 모체 로 오류동, 오릿골, 오륫골이라 부른다 한다. 오릿골[마을] : 항월 중앙에 있는 마을로 항월2리에 속해 있으 며 오류동이라고도 한다. 원풍산[산] : 항월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큰골, 오릿골 뒤에 있 다. 옛날에는 두음산이라 하였는데 어느해 큰 가뭄이 있어 노성 원님의 명에 따라 이 산에서 시우제를 지낸후 비가 내려 풍년이 들게 되어 그때부터 원풍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원풍재산 이 라고도 부른다. 장디말랭이[산] : 서변산을 잔디말랭이라고도 부른다. 절골[마을] : 항월3리로 옛날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주막거리[마을] : 항월1리 남독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호남지방 에서 한양가는 큰 길가로 주막이 많아 길손이 쉬어 갔다 하며 조 선시대 국립 여관이렀던 원(院)이 있었다. 청강수[못] : 항월1리 초포 동쪽 노선 하도리와 경계지점에 있었 던 못으로 옛날에는 수심이 깊어 명주실 한꾸러미가 들어갔다고 도 한다. 초포(草浦)[마을] : 항월1리를 초포 또는 풋개, 합정이라고도 부 른다. 초포(草浦)[내] : 항월1리 앞에 있는 내를 말하며 노성천과 연산 천이 합하는 곳으로 정감록에「계산석백(鷄山石白), 초포주행(草 浦舟行)」이라하여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초포에 배가 뜨 게 되면 신도안이 도읍지가 된다고 되어 있다. 통뫼산[산] : 풋개 남동쪽에 있는 산으로 독립유공자 염상오의 비가 서 있다. 풋개다리[교량] : 부적에서 초포로 넘어 오는 다리로 옛날에는 석교로 되어 있었고 호남지방에서 한양가는 큰 다리였으며 초포 교하고도 한다. 풋개들[논] : 항월1리 초포 앞에 있는 논이다. 합정리(合亭里)[마을] : 초포 또는 풋개라 부르며 노성천과 연산 천이 합하는 곳이라 하여 합정리라 부른다 한다. 항월(恒月)[마을] : 항월리를 항월이라고도 부른다. 황새말랭이[산] : 초포 입구 왼쪽에 있는 산을 황새말랭이라 부 른다. 풋개[마을] : 항월1리에 속해 있으며 항월리에서 가장 큰 마을 로 초포 또는 합정리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국립여관이었던 초포원(草浦院) 지금의 항월1리 초포는 조선시대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 던 큰길이었다. 여기에 국립 여관이었던 초포원이 있었다. ▶항월리 공동묘지에서 마제석검 출토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잔디밭고개 소로 개설시에 청동기 시대것으로 추정되는 마제석검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석검의 소 재는 알수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석검의 존재로 보아 분 묘형태의 유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항월리에서 매장문화재 청동발 출토 광석면 항월리383번지에서 1971년5월23일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 되는 청동발 즉 청동제 방을 1점을 항월리에 거주하는 남기창씨 가 발견하였다. 청동제 방울1점은 국고에 귀속되어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보관 하고 있다. ▶항월리 유동 고분(古墳) 광석면 항월리 유동에 옛날 무덤인 고분군(古墳群)이 있다. 고 분은 유동 마을 북쪽 뒷산에 남향하여 분포되어 있는데 지표면 에 파괴, 노출된 고분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이곳의 고분석재는 화강석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보이며 규모는 큰 편이다. 발견되는 토기편은 백제시대 것으로 이 고분들은 백 제시대의 석축묘 계통으로 보여지고 있다. ▶계룡산 신도안의 도참(圖讖)과 초포(草浦) 광석면 항월1리 앞에 노성천과 연산천이 합류하는 내가 있는데 여기를 추포 또는 풋개라 한다. 정감록에「계산 석백(鷄山石白), 초포주행(草浦舟行)」이라 했 다. 즉 계룡산의 돌이 희어지면 초포에 배가 다닌다는 설이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