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노티리(盧峙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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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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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군 화곡면(禾谷面)의 지역이었는데 삿갓재 밑에 있다하여
갓재, 갈재 또는 노티(盧峙)라 부르고, 이것이 변하여 가재 또 는 가티(佳峙)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목동 (木洞), 성동(聖洞)을 병합하여 노티리(盧峙里)라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노티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95세대에 350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가재, 수박골, 모가울, 웃가재, 성동, 소중리, 아래가재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재[마을] : 삿갓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갓재 또는 갈재, 노티라고도 하는데 변하여 가재 또는 가티라 하였다. 가티(佳峙)[마을] : 가재 또는 노티라고도 하며 삿갓재 밑에 있 는 마을이다. 갈재[마을] : 가재 또는 가티, 노티라고도 하며 삿갓재 밑에 있 는 마을이다. 갓재[마을] : 삿갓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갓재 또는 노티라 하였다. 거북산[산] : 산소앞에 두 마리의 거북이가 있었다고 해서 거북 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건너승동[마을] : 수박골이라고도 하며 성동 건너편에 있는 마을 이다. 노티(盧峙)[마을] : 가재, 가티라고도 하며 삿갓재 밑에 있는 마 을이다. 뒤족골[고개] : 뒤주골이라고도 하며 옛날 금뒤주가 있었다고 한 다. 뒤주골[고개] : 금뒤주가 있었던 고개라하여 뒤조골 또는 뒤족 골, 뒤주골이라고 부른다. 매봉[산] : 매봉재라고도 하며 가재 남쪽에 있는 산이다. 매봉재[산] : 가재 남쪽에 있는 산으로 매봉, 음봉이라고도 한 다. 모가울[마을] : 수박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모과나무가 있 어 모가울 또는 목동(木洞)이라고도 부른다. 목동(木洞)[마을] : 모가울이라고도 하며 수박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사지(寺址)[터] : 가재 마을 동쪽에 있던 옛 절터이다. 삿갓재[산] : 가재 뒤에 있는 높은 산으로 모양이 삿갓과 같이 생겼다한다. 상가티(上佳峙)[마을] : 옷가재라고도 하며 삿갓재 위에 있는 마 을이다. 성동(聖洞)[마을] : 가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뒷산에 절이 있고 중이 많이 살았으므로 승동(僧洞)이라 하던 절이 없어진후 성동(聖洞)이라 고쳐 부른다 한다. 소중리(小中里)[마을] : 가재 옆에 있는 마을이다. 수박골[마을] : 성동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 건너승동 또는 월성 동이라고도 부른다. 승가재[마을] : 상가티라고도 하며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승동(僧洞)[마을] : 성동이라고도 하며 가재 북동쪽에 있는 마을 로 뒷산에 스님이 많이 살았다하여 승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 다. 아래가재[마을] : 가재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가티라고도 한 다. 웃가재[마을] : 상가티라고도 하며 삿갓재 위에 있는 마을이다. 월성동(越聖洞)[마을] : 수박골이라고도 하며 성동 건너편에 있 는 마을이다. 응봉(應峯)[산] : 가재 남쪽에 있는 산이다. 하가티(下佳峙)[마을] : 아래 가재라고도 하며 가재 아래 쪽에 있는 마을이다. ▶엽전과 금뒤주가 있었던 뒤주골 노성면 노티리 가재골에 뒤주골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옛날 이마을에 가난한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단지 하나가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캐 내어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는 어머니의 제삿날 제물을 준비하 기 위해 그 단지를 팔기로 했다. 단지를 짊어지고 고개를 막 넘 으려 하는데 길가에 엽전이 떨어져 있었다. 그 엽전을 다 주어 가지고 조금 내려 가는데 거기에는 뒤주 하나가 있었고 그 안에 는 엽전이 가득차 있었다. 농부는 뒤주를 숨겨놓고 엽전을 조금 가지고 시장으로 가서 제 물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숨겨논 뒤주쪽으로 가보니 뒤주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 이튼날 뒤주를 찾디 위해 고개를 오르는데 뒤주는 보이질 않고 어제 놓고간 단지만 있었다. 그 속에는 엽전 이 가득차 있었다. 농부는 단지 속에 들어 있는 엽전을 땅에 묻 고 「내거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되지」 라 생각하고 빈단지만 가지고 고개를 막오르는데 그 옆에는 조금 전까지고 없었던 뒤주가 있었다. 그는 뒤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 놓으니 그 뒤주는 금 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금뒤주를 팔아 부자로 살았다고 하 며 그의 행실이 고와서 하늘에서 금뒤주를 내렸다고 하며, 뒤주 가 있었던 고개를「뒤주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노티리 사지(寺址) 노성면 노티리 가재 마을에 옛절터가 있다. 절터는 가재 마을 의 동쪽 끝 즉 호암산의 종턱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밭으로 개간되어 있고 조선시대의 기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절 은 조선시대 후기의 조그만 암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