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병사리(丙舍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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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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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군 장구면(長久面)의 지역으로 팔송(八松) 윤황(尹滉)의 묘
막(墓幕)인 병사(丙舍)가 있으므로 병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접지산리(接枝山里), 내촌리(內村里), 유봉리 (酉峯里), 대병리(大丙里), 소병리(小丙里)를 병합하여 병사리 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병사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22세대에 412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가람지 기, 가시라, 안말, 큰병사, 바우배기, 보가대, 사동, 작은병사, 유봉, 절골, 접지미, 하마비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람지기[마을] : 논밭 가랑이 많다하여 가람지기라 부른다. 가시라[마을] : 작은 병사라고도 하며 병사 동쪽에 있는 작은 마 을이다. 가시랏[마을] : 작은 병사라고도 하며 병사 동쪽에 있는 작은 마 을이다. 가장지기[마을] : 가람지기라고도 하며 좁은 산골짝을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다보니 가랑이 많아 가랑지기라 하였다고 한다. 긴보[보] : 병사 방죽 제방을 말한다. 긴보[들] : 저수지를 막게 되자 긴보자리에 제방뚝이 생겨 여기 를 긴보들이라고 한다. 내동제(內洞堤)[못] : 병사 방죽이라고도 하며 병사리 안말 앞 에 있는 마을이다. 내촌(內村)[마을] : 안말이라고도 하며 하마비 안쪽에 있는 마을 이다. 대병(大丙)[마을] : 큰 병사라고도 하며 병사의 큰 마을이다. 바우배기[마을] : 접지미 남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바위가 많이 박혀 있어서 바우배기라 부른다. 병사(丙舍)[마을] : 팔송 윤황의 묘망인 병사가 있어 병사 또는 병사리라 하였다. 병사방죽[못] : 병사리 안말 옆에 있는 방죽으로 내동재라고도 한다. 보가대[마을] : 접지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복호형(伏虎形)의 명 당자리가 있다하여 복호대(伏虎垈)라 하던 것이 보가대라 부르 게 되었다 한다. 또는 유봉(酉峯)의 닭과 유봉 남쪽에 있는 매봉 재의 매에 놀란 개구리가 납작 엎드린 형국이라 하여 보가대라 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사동(寺洞)[마을] : 종학이라고도 하며 가시랏 동북쪽에 있는 마 을이다. 소병(小丙)[마을] : 작은 병사라고도 하며 병사 동쪽에 있는 작 은 마을이다. 안말[마을] : 하마비(下馬碑) 안쪽에 있는 마을로 안말은 삼면 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한면은 길로 둘려 싸여 있어 사면이 싸여 있는 속이라 하여 안말이라 부른다 하며 내촌(內村)이라고 도 한다. 원고개[고개] : 병사리에서 죽림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사가 심 해 옛날 고개 그대로라고 하여 원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유봉(酉峯)[마을] : 유봉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유봉[산] : 보가대 서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51m되는데 팔송 윤 황의 묘소에서 서쪽에 있으므로 유봉이라 한다. 또 계형(鷄形)이 라 하여 유봉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윤명재 영당[고적] : 유봉에 있는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영당 (影堂)이다. 작은 병사[마을] : 병사 동쪽가에 있는 마을로 가시랏, 가시라 또는 작은 병사, 소병(小丙)이라고도 한다. 절골[마을] : 종학이라고도 하며 가시랏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 다. 접지미[마을] : 접지산 밑에 있는 마을로 접지산이라고도 한다. 접지산(接枝山)[마을] : 접지미라고도 하며 접지산 밑에 있는 마 을이다. 종학(宗學)[마을] : 가시랏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절이 있었다하 여 절골 또는 사동이라 하였는데 윤씨 문중에서 강당을 세우고 종학이라 하였다. 큰병사[마을] : 병사의 큰 마을로 대병이라고도 한다. 하마비(下馬碑)[마을] : 병사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하마 비가 있었다고 한다. ▶병사리의 요지(窯址 : 가마터) 노성면 병사리에 토기 가마터가 있다. 이 가마터는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밭으로 경작되어 있다. 가마터의 형태는 알 수없지만 수습되는 토기편과 불에탄 흙에서 가마터임이 확인 될 뿐이다. 수습 토기편으로 보아 백제시대의 경질 토기를 제작 하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병사리의 고분군(古墳群) 노성면 병사리 명재 선생의 영당이 있는 뒷산의 동남 방향에 백 제시대의 고분군이 있다. 고분의 형태는 밖으로는 보이지 않으 나 자연 괴석이 산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석축묘 계통임을 알 따름이다. ▶논밭 가랑이 많은 가람지기 노성면 병사2리에 논밭가랑이 많아 가람지기라고 부르는 마을 이 있다. 이 마을은 좁은 산골짜기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다 보 니 가랑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옛날 이마을에 아들과 함께 논밭을 일구며 사는 노인 한 분이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병석에 눕게 되었다. 아버지는 도저 히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느날 아들의 등에 업혀 가랑지기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는 「너이놈, 왜 논뱀이 하나를 어다디 팔아 먹었느냐?」 하시며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논뱀이를 헤어보니 하 나가 없었다. 그것은 아들이 합뱀이를 쳐서 하나가 없어졌던 것 이다. 얼마후 아들은 합뱀이 쳤던 논을 다시 갈라 놓고 아버지 를 등에 없고 가장자리로 나갔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그래야지」 하시며 흐믓해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