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당리(松堂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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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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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군 읍내면(邑內面)의 지역이었는데 산속에 신당(神堂)이 있
었으므로 속당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송당(松堂)이라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명동(月明洞), 송아리(松牙 里), 왕림리(旺林里), 상반리(上盤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 당리라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송당1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88세대에 34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대문아래, 불무고개, 작은골, 소라실, 소지기, 월명골, 탑사거리 등이 있 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각시바위[바위] : 베락바위 위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각시와 같 이 생겼다 하여 신부암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불운하게 태어난 한 처녀가 어느 도령의 사랑을 받았으나 끝내 맺지 못하고 죽음 을 당해서 한이 서려 죽었는데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노산(노산)[산] : 노상산이라고도 하며 높이 343m이다. 노성산(魯城山)[산] : 노성면 읍내리, 교촌리, 송당리, 가곡리, 상월면 산성리, 월오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343m이다. 노성 산성, 노산, 니성, 성산, 노성봉수라고도 한다. 노성산성(魯城山城)[고적] : 노성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 성으로 둘레 1,950척, 높이 8척으로 우물터와 봉수대가 있다. 뇌암(雷岩)[바위] : 베락바위라고도 하며 월명동 옆 산기슭에 있 는 바위이다. 니구산(尼丘山)[산] : 스님이 장삼을 입고 곱게 앉아 있는 모습 이라 하여 니구산이라 불렀고 지금은 노성산이라 부른다. 대문다리[마을] : 송당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99간 집이 있 어 여기에 대문이 있었다하며 대문다리 또는 대문밖이라고도 부 른다. 베락바위[바위] : 월명동 옆 산기슭에 있는 바위로 큰 바위가 조 각이 나 있는데 벼락을 맞아 그리 되었다고 한다. 노성봉수(魯城烽燧)[고적] : 노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통신수단 이었던 봉수대이다. 부엉바위[바위] : 송당 북쪽 산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마치 부엉 이와 같다 하며 뷩바우라고도 부른다. 픙년이 들때는 부엉 이들 이 떼지어 서식했고 흉년일때는 부엉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 다. 그래서 흉년일 때 여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불무고개[마을] : 부엉바위 아래에 있는 마을로 고개의 경사가 심하여 이 고개를 넘어 가려면 불무를 불 듯 이리저리 비틀거리 지 않고서는 넘어다닐 수 없다하여 불무골 고개라고도 부른다. 뷩바위[바위] : 부엉바위라고도 하며 송당 북쪽 산에 있는 바위 이다. 소곡(小谷)[마을] : 월명동 동쪽 작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노 성초등학교가 있다. 옛날에 99간의 큰 집이 있었으므로 작은 나 라 즉 소국(小國), 소곡(小谷)이라 불렀고 작은골이라고도 부른 다. 소라실[마을] : 송당 서쪽에 있는 마을로 모양이 소라와 같다하 여 소라실 또는 송아리라고도 부른다. 소라실방죽[못] : 송당 방죽이라고도 하며 소라실에 있는 방죽이 다. 소지기[마을] : 송당 동쪽에 있는 마을로 쇠지기 또는 소직이라 고도 부른다. 소직(素直)[마을] : 소지기라고도 하며 송당 동쪽에 있는 마을이 다. 송당(松堂)[마을] : 산속에 신당이 있어서 속당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송당 또는 송당리라 하였다. 송당방죽[못] : 소라실에 있는 방죽으로 소라실 방죽 또는 송아 곡제라고도 한다. 송아곡제(松牙谷堤)[못] : 송당방죽이라고도 하며 송당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송아리(松牙里)[마을] : 소라실이라고도 하며 송당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쇠지기[마을] : 소지기라고도 하며 송당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랑바위[바위] : 각시바위 위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신랑과 같이 되었다고 하며 신랑암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자기가 사랑하 는 사람과 인연이 맺어지지 않아 병석에 누워 앓다가 죽었는데 그 소원이 죽은 후에 이루었다는 한 남자의 넋으로 생겼다는 바 위이다. 신랑암(新郞岩)[바위] : 신랑바위라고도 하며 각시바위 위쪽에 있는 바위이다. 신부암(新婦岩)[바위] : 각시바위라고도 하며 베락바위 위에 있 는 바위이다. 양암(羊岩)[바위] : 염소바위라고도 하며 신랑바위 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염소바위[바위] : 신랑바위 동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마치 염 소와 같이 생겼다 하며 양암(羊岩)이라고도 부른다. 월명골[마을] : 송당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옥토망월형(玉ꧏ 望月 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그 인물이 옥(玉) 을 물고 망월(望月)한다는 뜻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될 명당 자리 라 하며 월명동이라고도 한다. 월명동(月明洞)[마을] : 월명골이라고도 하며 송당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윷판골[골] : 윷판 바위가 있는 골짜기이다. 윷판바위[바위] : 월명동 동쪽에 있는 바위인데 윷판이 새겨져 있다한다. 작은골[마을] : 월명동 동쪽 작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소곡이 라고도 한다. 탑사거리(塔四巨里)[마을] : 송당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탑과 네 갈래의 길이 있는 마을이다. 한배미 고라당[들] : 소라실 앞에 있는 들로 한배미가 들을 이루 었다. 황새모랭이[모롱이] : 신랑바위 아래에 있는 모롱이이다. ▶윤대감과 99칸 집 노성면 송당리 노성초등학교 자리에 옛날 윤대감이란 사람이 99 칸의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백성이 대궐같은 집 을 짓고 살면 안된다 하여 그집은 압류되어 조정에서 관리인이 내려와 관리 하였다. 관리인은 내려온지 첫날밤에 계속 죽어 나갔다. 하는 수 없이 그 집을 윤대감에게 돌려 주었다. 어느날 이었다. 윤대감이 잠자 리에 들었는데 밖에서 관하나가 들어오더니 「이집 상량이 내가슴을 누르고 있어 견딜 수가 없으니 상량을 옮겨주시오.」 하는것이었다. 그 다음날 윤대감은 일꾼을 시켜 상량을 헤쳐보 니 상량 밑에는 관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윤대감은 그집을 헐게 되었다고 하며 조정 관리들이 죽은 것은 담력이 약해서 기절해 죽은 것이라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