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송리(盤松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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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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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반송이 있어서 반송골 또는 반송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
군 부인처면(夫人處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정리(九井里), 평천리(平川里), 마구평리(馬九坪里), 동 신리(東新里), 대동(垈洞)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의 구 정리(龜亭里)일부를 병합하여 반송리라 하고 논산군 부적면에 편 입하였다. 행정구역은 반송1, 2, 3리로 되어 있으며 193세대에 638명의 주 민이 살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거북정이, 당너 머, 동신대, 반송, 병천, 부처댕이, 비석거리, 옷밥골 등이 있 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거북바위[바위] : 거북정이 가정집 앞마당에 있는 바위인데 모양 이 마치 거북이처럼 생겼다. 거북정이[마을] : 반송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구정리라고도 하 는데 옛날 표진강이 흐를 때 은진 관촉사 앞 배바위서부터 이곳 거북정까지 강물이 흘러 배가 왕래하던 곳으로 거북정 앞에서 낚 시를 하였다고 한다. 옛날 거북바위 위에 비석이 있어서 마을 이 름을 거북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읍터(龜邑)[터] : 병촌에 있는 은산현(恩山縣)의 터로 인조24 년(1646년)에 토적 유탁(柳濯)이 모반 역모를 꾀하다가 발각 진 정된 후 니산, 연산, 은진현을 폐합 은산현을 설치하고 공주목 을 강등 공주현으로 하는등 반역향에 대한 응징을 하였다. 그후 효종7년에 다시 3현으로 북현되었다. 구정리(九井里)[마을] : 거북정이 옆동쪽에 있는 마을로 우물이 아홉 개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구정리(龜亭里)[마을] : 거북정이라고도 하며 반송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남신대(南新垈)[마을] : 아호리의 남쪽에 마을이 생겨 남신대라 하였는데 아호리에 속해 있다가 행정구역 변경으로 반송1리에 속 하게 되었다. 옛날 표진강이 흐를 때 큰 홍수가 나 느티나무가 떠내려 오다가 이곳에 걸쳐서 살아 정자가 되었다고 하며 지금 도 자리잡고 있다. 당너머[마을] : 병촌 너머에 있는 마을로 산제당(山祭堂)너머에 있다. 동신대(東新垈)[마을] : 반송골 남동쪽에 새로된 마을인데 옛날 표진강이 흐를 때 남쪽에 남신대, 동쪽에 동신대 마을이 생겼다. 뒷들[들] : 동신대 뒤에 있는 들을 뒷들이라고 한다. 명당묘(明堂墓)[묘] : 반송1리 동신대에 있는 광산김씨 선대의 묘소로 거북이 머리에 있는 지형으로 명당의 묘라고 전한다. 반송(盤松)[마을] : 반송리라고도 하며 반송이 있는 마을이라하 여 마을 이름을 반송이라 하였다고 한다. 반송골[마을] : 반송 또는 반송리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짐승이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병촌[마을] : 반송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평천역이 있었 다 하여 평천 또는 병촌이라고도 한다. 병촌(屛村)[마을] : 병천이라고도 하며 반송골 북동쪽에 있는 마 을이다. 병촌방죽[못] : 병촌 남쪽에 있는 방죽으로 평천제라고도 한다. 부처댕이[마을] : 당너머 입구길가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 큰 돌부처가 있다하여 부처댕이라 부른다고 한다.불당골[골] : 붓당 골이라고도 하는데 분송골 앞에 있는 골짜기이다. 붓당골[골] : 반송골 앞에 있는 골짜기로 불당골이라고도 한다. 비석거리[마을] : 평천과 반송골 사이에 있는 마을로 광산김씨들 의 비석이 많이 서있는 마을이라하여 비석거리라고도 부른다. 비선거리[마을] : 비석거리라고도 하며 평천과 반송골 사이에 있 는 마을이다. 산제당(山祭堂)[신당] : 병촌 뒷산에 있는 산신제 제당이다. 앞들[들] : 거북정이 앞에 있는 들인데 거머리가 없다고 한다. 이는 은진미륵이 마주 보이는 곳으로 미륵님이 농민들을 위하시 어 거머리를 없게 했다고 한다. 옷밥골[마을] : 반송골 앞에 있는 마을로 의식동이라고도 하는 데 옛날 은산현의 옥이 있었고 옥의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다. 은산현터(恩山縣)[터] : 구읍터라고도 하는데 옛날 은산현의 터 이다. 의식동(衣食洞)[마을] : 옷밥골이라고도 하며 반송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평천제(平川堤)[못] : 병촌 남쪽에 있는 방죽으로 병촌방죽이라 고도 한다. 평천역(平川驛)[역] : 조선시대 통신, 교통수단으로 두었던 역이 다. ▶유탁(柳濯)의 모반(謨叛)과 은산현(恩山縣) 인조24년(1646년) 니산현인(尼山縣人) 유탁(柳濯)과 권대용(權 大用) 등이 임경업(林慶業)을 대장으로 사칭하고 역모를 꾀하다 가 니산현 초관(哨官) 이석룡(李碩龍)의 고변(告變)으로 발각되 어 유탁은 니산에서, 권대용은 전주에서 체포되어 모반은 확대되 지 않고 진정되었다. 조정에서는 유탁의 모반으로 니산, 연산, 은진현을 폐합 평천역 (平川驛 : 현 부적면 반송리)서(西)에 은산현(恩山縣)을 설치하 였고 (부적면 반송리 은산현터) 공주목(公州牧)을 강동시켜 공주 현(公州縣)으로 하는등 반역향(反逆鄕)에 대한 응징을 하였다. 그후 효종7년(1656년)에 다시 3현으로 복현되었다. ▶평천역(平川驛) 부적면 반송리에 옛날 평천역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교통, 통신 수단으로 두었던 역에는 마필(馬匹)과 역정(驛丁)을 두고 공문 (公文)을 전달하는 업무외에 공무상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마필 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거북머리형의 명당의 묘소 부적면 반송리에 광산 김공의 묘소가 있는데 이 묘소를 명당자 리라고 한다. 김공이 돌아가시자 후손들이 명당자리를 찾아 모시 려고 지관을 불러다가 묘소를 잡게 되었는데 지관이 이곳까지 와 서 「이곳이 좋은데..., 장례날 하관시는 철갓쓴 사람을 보고 하관 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해질 무렵 한 여자가 철부치는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후손들은 하관하고 산소를 썼다. 그 산소를 쓴 후 군수가 두분이나 나왔는데 군수가 나올때마다 천병만마의 소리가 나고 망두석이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묘소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신대라 부른다하며 이묘소는 거북의 머리에 있는 지형으로 명당자리라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