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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리(地境里)-1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지경리(地境里)-1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9 조회 888
첨부  
 
노성군 상도면(上道面)의 지역이었는데 노성군(魯城郡)과 공주
군(公州郡)의 경계에 있다하여 지경터 또는 지경처(地境處)라 하
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직리(山直里), 무동리(舞童里)
일부와 월오면(月午面)의 왕정리(旺井里)와 공주군 익구곡면(益
口谷面)의 월오리(月午里), 명동(明洞), 하성리의 각 일부와 공
주군 진두면의 공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지경리(地境里)라 하고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지경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41세대에 502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두내,
왕우래, 무동, 산정말, 상촌, 하촌, 잠방이, 중뜸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개재미들[들] : 지경리 남동쪽에 있는 들로 학당리 북쪽에 있다.
두내[마을] : 두내가 합하는 마을이라 하여 두내라 하며 왕우래
동쪽에 있다. 주내, 주천이라고도 부른다.
명동(明洞)[마을] : 왕우래라고도 하는데 웃말 동쪽에 있는 마을
이다.
무겁교(無怯橋)[다리] : 효자 박상문이 부모님께 공양하기 위해
밤에도 고기를 낚았다 하여 무겁교라 부르며, 조석다리라고도 한
다.
무동[마을] : 중뜸이라고도 하는데 잠방이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
이다.
무동산(舞童山)[산] : 지경리와 석종리 경계에 있는 산인데 높이
가 101m로 그 모양이 무동(舞童)과 같다고 한다.
백낭못[못] : 원앞들에 있던 못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산정리(山亭里)[마을] : 산정말이라고도 하는데 중뜸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정말[마을] : 산정리라고도 하며 마을 뒤 언덕에 정자나무가
있어 오가는 사람이 쉬어 갔다하며 중뜸 남동쪽에 있다.
상잠방[마을] : 잠방이 위쪽에 있는 마을로 웃말 또는 상촌이라
고도 부른다.
상촌(上村)[마을] : 웃말 또는 상잠방 웃잠방이라고도 하는데 잠
방이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낭당터[터] : 지경터 아랫잠방이에 있었던 서낭당터이다.
아랫말[마을] : 잠방이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촌, 아랫잠방
이, 하잠방이라고도 한다.
아랫잠방이[마을] : 아랫말이라고도 하며 잠방이 아래에 있는 마
을이다.
안살미들[들] : 아랫말 동쪽에 있는 들이다.
암물[우물] : 지경들 서쪽에 있는 우물인데 쪽지샘 동쪽에 있으
며 물이 흐리다 하여 암물 또는 암쭉지샘이라고도 부른다.
암쭉지샘[우물] : 암물이라고도 하며 지경들 서쪽에 있는 우물이
다.
옹지밭들[들] : 지경저수지 남쪽 아래에 있는 들이다.
왕우물[우물] : 왕우래에 있던 우물인데 백제 제22대 문주왕4년
(477년) 9월에 왕이 사냥 나왔을 때 이곳에서 자면서 이 우물을
마셨다하여 왕우물 또는 왕정이라 부른다 한다.
왕우래(王又來)[마을] : 웃말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백제때 제22
대 문주왕(文周王) 4년(477년) 9월에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이곳
에서 자는데, 좌평(佐平) 해구(解仇)가 살해하였으므로 백성들
이 원통히 여겨 왕이 또 오기를 원하여 왕우래라 한다고 한다.
왕정(王井)[우물] : 왕우물이라고도 하는데 왕우래에 있었던 우
물이다.
왕정제(王井堤)[못] : 주내방죽이라고도 부르며 주내마을 뒤에
있다.
원앞들[들] : 지경리 남쪽에 있는 넓은 들이다.
웃말[마을] : 잠방이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촌, 웃잠방이, 상잠
방이라고도 부른다.
잠방[마을] : 잠방이라고도 하여 옛날 잠방이 있었다고 한다.
잠방이[마을] : 무동산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세종때 누에치기
를 장려할 때 각 고을에 뽕나무를 심게 하고 누에치기는 잠방(잠
실)을 두었는데 이곳에 노성현의 잠방을 두었다 한다.
조석교(朝夕橋)[다리] : 효자 박상문이 부모님께 공양하기 위해
냇가에서 고기를 잡았는데 고기가 그치질 않았다 하며 그 다리
를 조석교라 부른다.
주내[마을] : 왕우래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두 내가 이곳에서 합
하므로 두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주내 또는 주래, 주천이라고도
한다.
주내방죽[못] : 주내 뒤에 있는 방죽으로 왕정 동쪽에 있으며 왕
정제라고도 한다.
주내천[내] : 석종리로부터 흘러 지경리를 거쳐 학당리로 흘러
들어가는 내이다.
주래[마을] : 주내라고도 하는데 왕우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주천(注川)[마을] : 주내 또는 주천이라고도 부른다.
중뜸[마을] : 잠방이 한가운데 있는 마을로 무동산 아래에 있으
며, 중리, 무동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이 마을에는 땅이 비옥해
서 농사가 잘되어 스님들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이마을에 와
서 시주하여 올렸다 한다. 중들의 뜰이라 하여 중뜰이라 불렀는
데 변하여 중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중리(中里)[마을] : 중뜸이라고도 하는데 잠방이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지경들[들] : 지경리 앞에 있는 들로 지경평야라고도 한다.
지경처(地境處)[마을] : 지경리를 지경처라고도 부른다.
지경터[마을] : 지경리를 노성군과 공주군의 경계라하여 지경터
라고도 부른다.
쭉지샘[우물] : 암물 서쪽에 있는 우물인데 동쪽에 암쪽지샘이
있어서 새의 쭉지와 같다 하여 쭉지샘이라 부른다 한다.
층보들[들] : 지경리와 신층리 사이에 있는 들이다.
하잠방[마을] : 아랫말이라고도 하는데 잡바이 아래쪽에 있는 마
을.
하촌(下村)[마을] : 아랫말 또는 아랫잠방이, 하잠방이라고도 한
다.

▶한에 울고 한을 달래는 지경터

상월면 지경리에 지경터라는 곳이 있다. 옛날에는 죄인을 삼태
기 가마에 태워서 다른 고을로 추방하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 중종때의 일이다. 노성땅에 오씨라고 하는 착한 머슴이 살
고 있었는데 그는 한동네에 사는 김진사 딸과 서로 사랑하는 사
이가 되었다. 어느날 김진사 딸이 산에서 나물을 뜯나가 뱀에 물
리게 되었다. 마침 오씨가 발견하고 그녀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
에서 내려왔다.
오씨가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다 하며 수군대기 시작했고 이소문
은 관가에 까지 알려져 상놈이 양반집 딸을 넘보았다 하며 곤장
을 때리고 추방령까지 내려졌다. 오씨 머슴은 억울한 누명을 쓰
고 지경터를 넘어 금강변으로 떠나갔다.
그루 그녀는 상월땅 지경터 금처로 이사와 살면서 오씨가 돌아
오기를 기다렸다. 지경터를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흰죽을 쑤워 먹
이며 오씨를 만나면 내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수년이 니라간 어느날 오씨가 찾아온 후부터 김진사 딸이 살던
집에는 며칠간 불이 켜지질 않았다. 그리고 그 집에는 또다른 사
람이 찾아와 죄인들에게 흰죽을 쑤워먹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못찾는 사람이 있으면 지경터로 가보라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