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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당리(鶴塘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학당리(鶴塘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9 조회 969
첨부  
 
노성군 하도면(下道面)의 지역으로 학이 떼를 지어 서식했다하
여 학당(鶴塘)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장
리(新庄里), 암천리(岩川里)의 각 일부는 상도면(上道面)의 무동
(舞洞), 대촌리(大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학당리(鶴塘里)라
하여 논산군 상월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학당1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84세대에 27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당마루, 대
촌, 도룡골, 바우내, 신장골, 학당, 함작골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낚시터[고적] : 조대라고도 하는데 세조때 박증(朴增)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이 바위에 앉아 조대구비의 고기를 낚았다 한다.
당마루[마을] : 바우내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 사육신(死
六臣)의 한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의 사당이 있었
다고 하며 당호라고도 부른다.
당호(堂湖)[마을] : 당마루라고도 하는데 바우내 서쪽에 있는 마
을이다.
대촌(大村)[마을] : 학당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한말이라고도
부른다.
대촌제(大村堤)[못] : 한말에 있는 방죽으로 한말 방죽이라고도
한다.
도롱골[마을] : 바우내 동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조대(釣台)를 돌
아서 들어가는 길이 있다하여 도롱골 또는 회동이라고도 부른다.
매죽헌사당터(梅竹軒祠堂)[터] : 옛날 당마루에 있었던 사육신
의 한 사람인 매죽헌 성삼문의 사당이 있었던 터이다. 세조때 성
삼문의 외손(外孫) 박증(朴增)이 이곳에 와서 은거하면서 매죽
헌 성삼문의 사당을 모셨다 하며, 그 자손들이 계속 제사를 받들
어 오다가 고종(高宗)때 국명(國命)으로 매죽헌의 봉사손(奉祀
孫)을 그 방손(傍孫)으로 정하고, 사당도 그 봉사손이 사는 연기
군 금남면 달전리로 옮기었다 한다.
바우내[마을] : 한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암천 또는 암천리라 부
른다. 산부리에 바위가 있는데 노성천(魯城川)이 이 바위를 돌아
서 흐른다하여 바우내라 부른다고 한다.
보인당터(輔仁堂) : 조대 위쪽에 청풍정(淸風亭)이란 정자가 있
는데 이 자리에 보인당(輔仁堂)이 있었다 한다. 보인당은 이 부
근 선비들이 합동으로 창건하여 이곳에서 학문을 강론(講論)하였
다고 한다.
산정말[마을] : 중뜸 남동쪽에 있는 마을뒤 언덕에 정자나무가
있어 오고 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곤 했다고 한다. 산에 정자가 있
는 마을이라 하여 산정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산정리라고
도 한다.
신장곡(新壯谷)[마을] : 신장골이라고도 하는데 한말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장골[마을] : 한말 남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전에 무안박씨(務安朴氏)의 묘를 새로 쓴 후에 마을이 생
겼다하여 신장골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신장곡이라고도 부른다.
아래잠방이[마을] : 옛날 노성현의 누에치던 잠방이 있었다는 잠
방이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촌 또는 하잠방이라고도 한다.
암천(岩川)[마을] : 한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바우내라고도 한
다.
암천리(岩川里)[마을] : 바우내 또는 암천이라고도 한다.
육각정(六角亭)[정자] : 조대 위쪽에 있는 정자로 정자가 육각
(六角)으로 되어 있으며 육모정 또는 청풍정이라고도 한다.
육모정[정자] : 청풍정 또는 육각정이라고도 한다.
육모정못[못] : 청풍정 앞에 있는 못이다.
잠방이[마을] : 무동산 남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세종때 누에치기
를 장려하여 각 고을에 뽕나무를 많이 심고 누에를 치는 잠방을
두었는데 이곳에 노성현의 잠방을 두었었다고 한다.
장발골[골] : 신장골 앞에 있는 골짜기이다.
조대(釣台)[고적] : 조대구비 동쪽 산부리에 있는 큰 바위로 세
조때 처사(處士) 박증(朴增)이 그 외조(外祖) 매죽헌(梅竹軒) 성
삼문(成三問)의 사당을 모시고 은거하면서 이 바위에 앉아 조대
구비의 고기를 낚았다고 한다.
조대구비[내] : 바우내 산부리 밑에 있는 내(川)로 노성천이 이
곳에서 굽이를 이루고 소(沼)가 되었다.
청풍정(淸風亭)[정자] : 조대 위쪽에 있는 정자로 무안박씨가 단
종때의 처사(處士) 박증(朴增)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정자를 세웠다 하며 육각정 또는 육모정이라고도 부른다.
하잠방[마을] : 아래 잠방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위에 노성현의
잠방이 있었다고 한다.
하촌(下村)[마을] : 하잠방 또는 아래 잠방이라고도 부른다.
학당(鶴塘)[마을] : 학당리를 말하며 옛날 학이 많이 서식했다
고 한다.
한말[마을] : 학당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한촌. 대촌이라고도 부
른다.
한말방죽[못] : 한말에 있는 방죽으로 대촌제라고도 한다.
한촌(閑村)[마을] : 한말이라고도 하는데 학당리에서 가장 큰 마
을이다.
함작골[마을] : 신장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회동(回洞)[마을] : 도롱골이라고도 하는데 바우내 동남쪽에 있
는 마을이다.
훈련정터(訓練亭)[터] : 보인당 동쪽에 있던 훈련정의 터이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