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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리(蓋尺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개척리(蓋尺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9 조회 966
첨부  
 
앞에 냇물이 흐르고 있고 낮은 산등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개
재, 개자 또는 개척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본래 석성군(石城郡)
병촌면(甁村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불
암리(佛岩里), 원당리(元堂里) 일부와 우곤면(牛昆面)의 서당동
(書堂洞) 일부와 임천군(林川郡) 인세면(仁世面) 중산리(中山
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개척리라 하고 논산군 성동면에 편입하
였다. 1932년 논산천 제방을 수축함에 따라 채운면 신촌리가 편
입되었다.

행정구역은 개척1, 2, 3리로 되어 있으며 250세대에 860명의 주
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개자, 금성,
나루개, 새말, 딴펄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강경대교(江景大橋)[다리] : 신촌 남서쪽 논산천에 있는 다리로
강경읍에서 성동면으로 들어가는 다리인데 1932년에 놓았다.
개자[마을] : 개척리라고도 하는데 앞에 있는 내가 흐르고 낮은
산등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개자 또는 개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개재[마을] : 개척리 또는 개자라고도 한다.
개재나무다리[교량] : 개재에 있는 다리로 옛날에는 나무로 되
어 있었다고 한다.
개척(蓋尺)[마을] : 개척리, 개자, 개재라고도 한다.
금성(錦城)[마을] : 딴펄이라고도 하는데 금성산 밑에 있는 마을
이다.
금성산(錦城山)[산] : 딴펄뒤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58m된다. 금
강가에 있는 산으로 이산에 토성(土城)이 있다하여 금성산이라
부른다 한다. 백제때에는 사비성을 지키는 외곽지대의 중요한 성
이었다.
나루개[마을] : 불암이라고도 하는데 개자 남쪽에 있는 마을이
다. 옛날 여기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딴펄[마을] : 개재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금성, 하촌이라고도 부
른다. 마을 서남쪽에 펄이 외따로 있다하여 딴펄이라 부르게 되
었다고 하며 금성산 밑에 위치하고 있고 옛날에는 풍경이 아름다
운 고을이었다고 한다.
부처바위[바위] : 불암산에 있는 바위인데 부처가 새겨져 있다.
불암(佛岩)[마을] : 나루개라고도 하는데 개재 남쪽에 있는 마을
로 동쪽 신촌리에 불암산이 있고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다.
불암산(佛岩山)[산] : 신촌 뒤에 있는 산으로 부처바위가 있다.
불암산성(佛岩山城)[성] : 나루개 동쪽 불암산에 있는 산성으로
토성으로 되어 있고 성주위는 약 560m정도가 된다. 백제시의 산
성이다.
불암사(佛岩寺)[사찰] : 불암산 중턱에 불암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새말[마을] : 신촌이라고도 하며 들판에 새로된 마을이라 하여
새말이라 부른다고 한다.
순교기념탑[탑] : 병촌 성결교회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6.25당
시 희생당한 66인의 교인 순교기념탑으로 1989년에 세웠으며 기
독교 대한성결교회 순교사적지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촌(新村)[마을] : 새말이라고도 하는데 들판에 있는 마을이다.
전우치나무[나무] : 개척리 은행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전우
치가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된 나무라 하여
전우치 나무라고 부른다.
하촌(下村)[마을] : 딴펄 이라고도 하는데 개자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불암사 도승

옛날 개척리에 있던 한절에 도통한 한 도승이 있었다. 어느날이
었다. 부처님 앞에서 돋경을 하는데 어쩐일인지 부처님이 까맣
게 보였다. 도승은 깜짝 놀랐다. 부처님의 몸에 온통 벼룩이 새
까맣게 붙어 있었다. 이것은 무슨 변고가 일어날 징조라 생각하
고 벼룩을 잡아 없애기 시작했다.벼룩 몇 마리는 놓치고 말았다.
「큰 일이구나 저것들이 앞으로 큰 화근이 될 것이다.」
하며 걱정을 하고는 한양에 올라가 조정 사람들에게 국난이 있
을 것이니 대비해야 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미친 중이라고 비웃
음만 당하고 내려 왔다. 그뒤 일본은 도승이 말한대로 왜적들이
벼룩떼처럼 쳐들어 왔다. 왜적을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이절에
제일 먼저 불을 질렀다고 한다.

▶개재 나무다리

개척1리 개재마을에 나무로 되 다리가 있었는데 이다리를 개재
나무다리라고 불렀다. 옛날 이마을에 한농부 내외가 살고 있었
다. 하루는 부인이 밭에 나가 거름을 주려고 하는데 백사 한 마
리가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다행히 그 백사는 그
녀를 물지 않고 어디로인지 사라졌다.
그후 그녀는 허리가 몹시 아파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어느날이
었다. 그녀의 꿈속에 그 백사가 나타나서 「나무다리 달밝은 날
가서 왔다갔다 하면 나을것이요」하고는 사라졌다. 그녀는 기어
서 백사가 하라는 대로 다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아픈 허리
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허리나 다리가 아프
면 이 다리를 왕래 했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