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지리(定止里) | ||||
---|---|---|---|---|---|
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914 |
첨부 | |||||
이 마을에 동지미란 산이 있어 정지라 부른다고 한다. 본래 석
성군(石城郡) 정지면(定止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리(上里), 야동(冶洞), 하리(下里)의 각 일부와 원북면(院北面)의 소죽리(小竹里) 일부와 노성군(魯城郡) 광석면 (光石面)의 입석리(立石里), 갈사리(葛山里)의 각 일부와 명사리 (明士里)를 병합하여 정지리라 하고 논산군 성동면에 편입하였 다. 1988년2월17일 정지4리가 분리되어 현 행정구역은 정지1, 2, 3, 4리로 되어 있으며, 330세대에 1,25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 다. (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견티, 그듬재, 난말, 동라, 동지미, 불못골, 서라, 점뜸, 정지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갈매방죽[못] : 정지리와 원남리 사이에 있는 방죽인데 갈마음수 형(葛馬飮水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견티(堅峙)[마을] : 구등재라고도 하는데 정지리에서 가장 큰 마 을이다. 구듬재[마을] : 정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구등재 또는 견티라 고도 한다. 구등재[마을] : 정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산이 빙 둘러 있어 서 우묵한 곳에 마을이 있다하여 구등재 또는 구등현이라고 하였 는데 이것이 변하여 구듬재 또는 구로리라고도 한다. 구등현(九登峴)[마을] : 구등재라고도 하며 정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구토리(舊土里)[마을] : 구등재라고도 한다. 굿개[들] : 갈매방죽 아래에 있는 들을 말한다. 금박재[고개] : 논산 부여간 국도에서 성동면사무소를 향해 2km 쯤 가다보면 조그마한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금박재라 부른 다. 나촌(蘿村)[마을] : 난말이라고도 하며 구등재 서쪽에 있는 마을 이다. 난말[마을] : 구등재 서쪽에 있는 마을로 나촌이라고도 부른다. 동라(東蘿)[마을] : 정지2리이며 동편 난말이라고도 하는데 난 말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동라라고 부른다. 동지미[마을] : 동지미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동지미[산] : 구등재 동쪽에 있는 산으로 동지미 또는 정지산이 라고도 부른다. 동편난말[마을] : 난말 동쪽에 있는 산으로 동지미 또는 정지산 이라고도 한다. 불ant골[마을] : 견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마을에는 대장간이 있었고 이름난 대장장이가 있어서 농기구를 만드는 솜 씨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장간의 불 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뭇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야동 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서라(西蘿)[마을] : 서편 난말이라고도 하는데 난말 서쪽에 있 는 마을이다. 서편난말[마을] : 난말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서편난말이라 부른다 하며 서라라고도 한다. 시달리고개[고개] : 정지2리에 있는 작은 고개이다. 안현(鞍峴)[고개] : 갈매 방죽 옆에 있는 고개인데 말을 타거나 몰고가던 사람들이 이 고개에 다달으면 말안장을 내리고 마을 쉬 게 하였던 고개라 하여 안현고개라 부른다 한다. 야동(冶洞)[마을] : 불뭇골이라고도 하는데 견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큰 대장간이 있어 불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뭇 골 또는 야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수고개[고개] : 성동면사무소에서 우곤리 쪽으로 넘어가는 고 개로 옛날 여우가 여인으로 둔갑하여 나타났던 고개라 하여 여수 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장구논[논] : 난말 앞들에 있는 논인데 마치 장구와 같이 생겼다 고 한다. 점뜸[마을] : 견티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그릇을 굽는 옹기 점이 있었다고 한다. 정지(定止)[마을] : 동지미 산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정지 또는 정지리라 부른다고 한다. 정지산(定止山)[산] : 동지미라고도 하는데 견티 동쪽에 있는 산 이다. 정지산성(定止山城)[성] : 정지리 동지미 산정에 있는 산성으로 백제시대의 성으로 추정된다. 이산성은 주위가 430m 정도이며 백 제때 사비성의 수비를 위해 쌓은 산성으로 추정되며 지금도 우물 이 남아 있는데 직경이 2m 정도 된다. ▶정지리 산성(정지리 山城) 성동면 정지리 동지미산 또는 정지산에 정지리 산성이 있는데 토성으로 성의 형태는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도 군용 우물로 사용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있다. 이 산성은 주위가 430m정도 인데 백제 군사들이 주둔했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금씨가 열린 금박재 정지리에 금박재라고 하는 고개가 있다. 옛날 이 고개 밑에 열 심히 일하면서 남을 도와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노부부가 있었 다. 하루는 들에서 일하고 고개를 넘어오려고 하는데 고개에 박 이 탐스럽게 넝쿨을 뻗고 자라고 있었다. 노부부는 그 박을 정성 껏 가꾸기 시작했다. 얼마후 박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더니 잘익어갔다. 그중 잘 익은 박을 하나 따다가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씨가 박혀 있을 곳에는 금씨가 박혀 있었다. 노부부는 금씨를 부락민 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 마을은 부유해져 갔다. 이 소문을 들은 왜적들은 노부부를 끌고가 출처를 대라고 고문을 하기 시작했 다. 이때 욕심 많은 한사람이 말을 해주었다. 왜적들이 고개에 이Tssm 박을 따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먹구름이 일더니 억수같 이 비를 뿌리며 천둥번개까지 내리쳐 왜적들을 자취도 없이 삼 켜 버렸다. 그 후 박이 열렸던 곳에는 바위 하나가 나타났는데 이바위를 금박바위라고 불렀고 이고개를 금박재라고 부르게 되었 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