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촌리(茅村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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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09 | 조회 | 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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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소재지로서 28개리를 관할하였는데 마
을에 띠가 많이 있어서 띠울 또는 모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고리곡리(古里谷里), 웅천리(熊川里), 신계리 (新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모촌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모촌 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210세대에 66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곰 내, 띠울, 미낭골, 원실보, 하마촌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고리곡(古里谷)[골] : 고리실이라고도 한다. 고리실[골] : 띠울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고리곡이라고도 한 다. 곰내[마을] : 띠울 북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곰내가에 있으며 웅 천이라고도 부른다. 곰내[내] : 산직리 곰티에서 발원하여 모촌리 곰내 앞을 거쳐서 인천천으로 들어가는 내이다. 띠울[마을] : 모촌리를 말하며 마을에 띠가 많아 띠울이라 하였 다고 한다. 모산(茅山)[산] : 모촌리 뒤에 있는 산인데 높이가 176m이다. 모촌리산성(茅村里山城)[성] : 배암재 구릉에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을 모촌리 산성이라 한다. 토성으로 되어 있는데 모촌리에 서 올려다 보면 마치 지형이 말안잔처럼 보인다. 황산성과 비슷 한 형태의 남향성이며 유물로는 백제때의 기와편과 항아리등이 발견되고 있고 백제말까지 사용되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모촌(茅村)[마을] : 모촌리를 말한다. 미낭골[마을] : 모촌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고리실에 있으며 원앙동이라고도 한다. 웅천(熊川)[마을] : 곰내라고도 하며 띠울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 다. 웅천(熊川)[내] : 곰내라고도 하며 곰티에서 발원하여 모촌리 곰 내를 거쳐 인천천으로 들어가는 내이다. 원수보(遠水洑)[마을] : 원실보라고도 하며 띠울 남쪽에 있는 작 은 마을이다. 원실보[마을] : 띠울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옛날에는 이 마 을에 원집이 있었고, 지금은 큰 보(洑)가 있다하여 원수보 또는 월실, 원실보라고도 부르다. 원왕동(遠旺洞)[마을] : 미낭골이라고도 하며 고리실에 있는 마 을이다. 원집터[터] : 띠울 남쪽에 있는 원실보 마을에 원집터가 있었 다. 원(院)이라 함은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의 숙식등 여행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각여로에 설치한 것으로 원이 있었다고 한다. 월실[마을] : 원실보라고도 하며 띠울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 다. 하마비[비] : 하마촌에 하마비가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없어지 고 터만 남아있다. 하마촌(下馬村)[마을] : 띠울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하마비 가 있었다고 한다. ▶귀명봉 보루(貴名峯 堡壘) 모촌리 산성에서 서쪽으로 약 1.5km지점에 귀명봉 보루가 있 다. 주위는 약 20m 정도의 석축 보루인데 지형상으로 모촌리 산 성에서는 남쪽 운주지방에서 올라오는 적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 어 보이지 않아 귀명봉 보루를 만들어 모촌리 산성으로 연락했 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촌리의 여우 골짜기 모촌리에 여우 골짜기라고 하는 곳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불 여우 두 마리가 나타나 짐승들을 물어가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 람들은 당집 한구석에서 불여우 두 마리가 닭을 물어 뜯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중 한 마리를 잡아 당집과 함께 태워버렸다. 그후 이마을에서는 매일 한 사람씩 죽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불 여우 때문이라 하여 고사를 지냈는데 그후 사람은 죽지를 않았지 만 그 골짜기에 있는 나무, 풀들이 모두 말라 죽었다. 그후 어느 해에 산사태가 나서 그 골짜기는 영영 묻혀 버렸는데 지금도 이 곳을 여우 골짜기라 부른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