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곡리(盤谷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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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21 | 조회 | 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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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지역이었는데 지형이 마치 소반과 같
이 생겼다하여 반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당리(書堂里), 원북리(院北里), 갈전리(葛田里), 하명암리(下 鳴岩里), 거사리(居士里)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 상리(東床里) 일부와 내적면(內赤面)의 고정리(高亭里) 일부를 병합하여 반곡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 은 반곡 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36세대에 449명의 주민 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난민촌, 동상 골, 반곡, 서당골, 서점리, 원디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난민촌(難民村)[마을] : 봉동이라고도 하는데 반곡 동북쪽에 있 는 마을이다. 동상골[마을] : 반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상리라고도 한다. 뒷산이 그리 높지않고 앞에 병풍처럼 평쳐져 있더서 마을에 질병 이 들어오지 않으며 또한 피난처로도 알려져 있는 마을인데 이 마을에 들어오면 동상(東床)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여 동상 골이라 부른다 한다. 동상리(東床里)[마을] : 동상골이라고도 하며 반곡 서남쪽에 있 는 마을이다. 반곡(盤谷)[마을] : 반곡리를 말하며 지형이 마치 소반과 같이 생겼다하여 반곡이라 부른다. 반곡서당터(盤谷書堂)[터] : 반곡리 서당골에 옛서당터가 있다. 조선 숙종때 김씨라는 사람이 서당을 세우고 후진들을 교육시키 던 서당의 터라 한다. 봉동(鳳洞)[마을] : 반곡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난민촌이라고 도 부르며 1950년 6.25당시의 피난민들이 살아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서당곡(書堂谷)[마을] : 서당골이라고도 하며 국사봉 서쪽에 있 는 마을이다. 서당골[마을] : 국사봉 뒤쪽에 있는 마을로 서당골이라고도 한 다. 조선시대 숙종때 김씨가 서당을 세우고 후진을 가르쳤던 마 을이라 한다. 서림곡(西林谷)[골] : 옛날엔 숲이 우거져 머루와 다래, 으름이 많은 골짜기로 동상골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산과일을 따먹었다 하는데 서쪽 숲에 있던 골짜기라 하여 서림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 한다. 서림리(西林里)[마을] : 반곡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디[마을] : 동상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원북 또는 원북리라 고도 한다. 옛날 나그네들이 길을 가다가 자고 가도록 지어놓은 집을 원집이라 하는데 여기에 그 원집이 있었던 자리라 한다. 원북리(院北里)[마을] : 원디라고도 하며 동상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휴정서원터(休亭書院)[터] : 동상골 앞에 있는 휴정서원의 터로 1700년(숙종26년)에 서원을 세우고 1868년(고종5년)에 서원훼철 령에 의하여 철폐된 서원의 터이다. ▶서림리의 말무덤 양촌면 반곡1리를 서림리라고 했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는 말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이조 중엽때의 일이다. 이 마을에 권판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집에는 마음씨 착하고 일을 잘하는 비복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권판서는 이 비 복에게 한양에 심부름을 보냈는데 불과 몇시간만에 한양을 다녀 왔다. 기이하게 여긴 권판서는 유심히 살피다가 비복 겨드랑이 에 날개가 있는 것을 알고 어느날 술이 취하게 한 다음 그 날개 를 잘라 버렸다. 그 날래를 자르자 비복은 죽고 말았다. 그러던 3일후 천마(天馬) 한필이 내려와 그 비복의 묘소 앞에 무릎을 꿇 고 앉더니 그 자리에서 즉사라고 말았다. 권판서는 천마를 장사 지내고 묻어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마가 묻힌 무덤이라하 여 말무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