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산직리(山直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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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21 | 조회 | 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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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지역이었는데 옛날 이 마을에 산직집
이 있어서 산직말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 웅티리(上熊峙里), 장동(壯洞)을 병합하여 산직리라 하고 논산 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산직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05세대에 369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골막, 윗목, 녹산, 승지골, 장골, 성안뜸, 신정리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곡막(谷幕)[마을] : 골막이라고도 하는데 산직말 남서쪽 골짜기 에 있는 마을이다. 골막[마을] : 산직말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처음엔 골짜 기에 움막을 짓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하여 골목 또는 곡 막이라고 부르며 상웅티라고도 부른다. 곰재[고개] : 곰티, 웅재라고도 하는데 산직리에서 벌곡면 싸리 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곰티[마을] : 뒷목이라고도 하는데 곰티재 아래에 있으며 장골 뒤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곰티재[고개] : 웅티 또는 곰티, 곰재라고도 한다. 높이가 273m 이다. 국사봉보루(國師峯堡壘)[보루] : 산직리 산성 바로 뒷산 가장 높 은 곳에 있는 보루로 주위는 약 20m정도이다.녹산[마을] : 산직 말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푸르렀던 마 을이라하여 녹산이라 부른다. 덕목티(德木티)[고개] : 뒷목재라고도 하며 산직리 뒷목에서 벌 곡면 덕곡리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이다.峙 뒷목[마을] : 장골뒤 북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곰티재 아래에 있 다. 옛날 여기엔 수백년된 떡갈나무가 있었는데 나라가 어지러 울 때가 되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어 덕을 주는 나무가 있 는 마을이라하여 덕목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뒷목이 되었다고 한 다. 뒷목재[고개] : 덕목티라고도 하며 뒷목에서 벌곡면 덕목리로 넘 어가는 고개이다. 산직말[마을] : 산직리를 말하며 옛날 산직집이 있었다고 한다. 산직산성(山直山城)[성] : 산직리 동쪽 구능위에 있는 산성으로 석축산성이다. 성안뜸[마을] : 옛날 삼국시대때 백제에서 성을 쌓고 적과 싸웠 다는데 그 성안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성안뜸이라 부른다 한다. 승적곡(勝敵谷)[마을] : 승적골이라고도 하며 산직말 동쪽 골짜 기에 있는 마을이다. 승적골[골] : 산직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오랑캐가 쳐들 어 왔을 때 적을 무찌르고 승리한 골짜기라 하여 승적골 또는 승적곡이라고도 한다. 승지골[마을] : 벼슬을 많이 하는 집이 있었다하여 승지골 이라 부른다 한다. 웅티[마을] : 장골 뒤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뒷목이라고도 부른 다. 웅티[고개] : 곰재 또는 곰티라고도 한다. 장골[마을] : 산직말 앞에 있는 마을로 장동이라고도 하는데 옛 날 이 마을에 장사가 살았다고 한다. 장군바우[바위] : 장골 뒤에 있는 바위인데 옛날 이 마을에 장사 가 살았는데 이 바위에서 놀아서 그 장수가 놀던 자국이 바위에 남아있다하여 장군암이라고도 부른다. 장동(壯洞)[마을] : 장골이라고도 하는데 산직말 옆에 있는 마을 이다. ▶산직리 산성(山直里 山城) 산직리 동쪽 구릉위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지형이 마치 말안잔처럼 생겨 있고 북쪽도 국사봉과 뒷목재 고개를 거쳐 서 황산리로 통하는 산이고 남쪽은 급경사가 되어 직접 올라오기 는 불가능한 지형이다. 이 성은 퇴뫼식의 석축 산성으로 자연활석을 이용하였고 화강 암, 차돌 등을 이용하였다. 성주위는 대략 400m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산성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국사봉보루(國師峯堡壘) 산직리 바로 뒤에 있는 국사봉에 보루가 있다. 주위는 약 20m 정도인데 성벽으로 남아있는 흔적은 거의 없고 석재(石材)만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이 국사봉보루는 규모는 작지만 황산성과 연락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산직리 사기정골 요지(窯址 : 가마터) 산직리 사기정골 조선시대의 가마터인 요지가 있다. 이 요지는 사기정골 골짜기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방죽을 만들면서 소로 를 만들 때 노출 파괴되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자기편은 대부분 백자편으로 조선시대 말기의 요지로 추정하고 있다. ▶산성(山城) 쌓기 내기 양촌면 산직리 동쪽 구릉위에 산직리 산성이 있다. 옛날 산직리 에 슬하에 남매를 두고 사는 아낙네가 있었다. 그남매는 힘이 장 사였는데 어느날 힘과 지혜를 겨루는 내기를 하기로 했다. 아들 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기로 하고 딸은 그동안 산성을 쌓기로 했다. 그들은 이번 내기에서 지는쪽은 죽이기로 약속했 다. 내기는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딸보다 아들을 살리고 싶었다. 딸 은 어찌나 힘이 장사였던지 성을 쌓는데 딸이 이길 것만 같았 다. 어머니는 딸의 성쌓기를 늦추기 위하여 팥죽을 쑤어 먹게 했 다. 딸이 팥죽을 먹고 있는데 동생이 돌아오는 나막신 소리가 들 려 왔다. 이미 때는 늦었다. 딸은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통곡을 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다가 치마에 담겨 있던 돌이 굴러 흩어져 내려갔다. 그는 패배를 자인하고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하 였다. 지금도 이 산성을 보면 돌이 읕어져 내려 있는데 딸이 앞치마 에 담겼던 돌이 흩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산직리 승적골 고분(古墳) 양촌면 산직리 승적골에 백제시대의 고분 10여기가 있다. 이 고 분은 승적골 계곡 동측부에 자리하고 있는 구릉의 사면자락에 길 게 분포되어 있고 이미 파괴되어 석재만 있을 뿐이며 백제시대 의 토기편이 소량 발견되고 있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