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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梧山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오산리(梧山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21 조회 826
첨부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의 지역이었는데 사방이 높은 산이 둘
러있는 가운데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오미 또는 오산(鰲
山)이라 하였다. 그후 유명한 학자 이명봉(李鳴鳳)이 여기에 살
면서 자기의 호(號) 오산(梧山)이라 부르게 하였다 한다.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오산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25세대에 435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위오미
(으뜸, 상오산, 상리), 중리, 와촌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달이산성(達伊山城)[성] :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 경계에 있는
천연적인 산성으로 고려때 의적 달이가 이곳에 은거하여 관군과
싸웠다고 한다.
묘령봉(妙齡峯)[산] : 짜개봉 이라고도 하는데 오미 동쪽에 있
는 산으로 높이가 371m이다.
무수재(舞袖)[고개] : 바랑산 남동쪽에 있는 고개인데 선인무수
(仙人舞袖)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상리에서 벌곡면 수락리로 넘
어가는 고개이다.
바랑산[산] : 달이성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371m이며, 산의 모양
이 마치 바람과 같이 생겼다하여 바랑산이라 부른다.
상오산상리(上梧山上里);마을] : 오미 위쪽에 있는 마을로 위오
미라고도 한다.
상리[마을] : 이조 초엽 상리라는 기와공이 오산리에 와서 기와
굽는 기술을 배워갔다하여 그 일본인 이름을 따서 상리라고 하였
다고 한다.
오미[마을] : 사방이 산으로 둘러있고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오미 또는 오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산(梧山)[마을] : 오미 또는 오산리라고도 한다.
와촌[마을] : 고려초엽 와촌이란 도적두목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악질적인 부자들의 물건만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이었는데 정부군이 수탕작전을 3년동안 벌렸지만 패배하고
돌아가자 도적들은 자진 해산하였고, 와촌이라 두목은 이곳에 눌
러 앉아 농사를 짓고 살았다하여 와촌이라 부른다 한다.
웃뜸[마을] : 위오미라고도 한다.
위오미[마을] : 오미 위쪽에 있는 마을로 주위가 큰 산으로 가려
져 있고 그 가운데 낮은 곳에 마을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
로 동산의 위에 있다하여 위오미 또는 웃뜸, 상오산성이라 부른
다.
짜개봉[산] : 오미 동쪽에 있는 산인데 높이가 371m되는 봉우리
가 마치 쪼개져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묘령봉이라고도 한다.
중리(中里)[마을] : 오미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달이산성(達伊山城)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 경계 성재에 있는 산성으로 달
이산성이라 한다. 옛날 고려 초협 이곳에는 달이라고 하는 의적
이 은거하고 있었다. 주정의 군사와 싸우기를 3년, 싸움에 지친
의적들은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달이도 칼
을 내팽개 치고
「자! 우리는 이젠 고향에 가서 농사난 짓자」
하고 뿔뿔히 헤어져 갔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달이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하여 달이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오산(原梧山)

양촌면 오산리에 원오산이란 산이 있다. 이조초엽 왕족 한 사람
이 있었는데 그는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어느날 경치 좋은 곳
을 찾아 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정자를 짓고 시조
를 읊으며 소일 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비가오기 시작했다. 그래
도 그는 시조를 읊고 있었다. 그후 그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
니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곳이 그가 늘 가꾸던 오동나무 밑이
었다 하여 이곳을「오산」이라 부르다가 변하여「원오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우월감에서 붙여진 상리(上里)

양촌면 오산리에 상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이조 초엽때의 일
이다. 일본인 상리라는 기와공이 이곳에 와서 기와굽는 기술을
배워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은 그 일본인 이름을 따서「상
리」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왜인에 대한 우리민족의 우월감에
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의적두목이 살았던 와촌

양촌면 오산리에 와촌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옛날 고려초엽
때의 일이다. 이곳에 와촌이란 도적 두목이 살았다. 그는 권력
을 이용하여 재물을 벌어들인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
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라에서는 군대를 풀어 토벌 작전을 벌
였다. 그러나 3년간을 싸웠으나 정부군들이 패하여 물러나게 되
었다. 그후 나라도 평온을 되찾았다. 와촌 두목은
「이제 나라도 평온해졌으니 우리도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나 짓
고 살자.」
고 하였다. 그후 도적들은 자진 해산하였고 와촌 두목은 여기에
눌러 앉아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와촌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