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임화리(林花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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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21 | 조회 | 1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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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교리(新郊里), 백촌리(柏村里), 계동 리(桂洞里), 무수동(無愁洞), 상고리(上高里), 하고리(下高里), 구만리(九萬里)와 은진군 가야곡면의 석서리(石西里), 양촌리(陽 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임화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 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임화1, 2, 3리로 되어있으며, 인구는 165세대에 449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계 동, 노가티(봉황리), 무수리, 벌말(평촌), 빈골(빈곡), 빼재, 상 고(상고리, 고산임화), 새터(신교리), 잣정이(백촌리) 등이 있으 며 3열녀가 배출된 열녀의 고장이기도 하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루개재[고개] : 고산 임화에서 잣정이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옛 날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큰 길이었다. 계동(桂洞)[마을] : 무수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고산임화[마을] : 옛날 전라도 고산땅이었다 하여 고산 임화라 부르며 임화리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고라고도 부른다. 남당산(南堂山)[산] : 높이가 444m되는 밤아니재 동쪽에 있는 산 이다. 노가티(盧哥峙)[마을] : 잣정이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노씨 가 살았다 하여 노가티라 부른다 하며, 또 봉황산이 있다 하여 봉황리라고도 부른다. 무수동[골] : 무시덕골이라고도 하는 골짜기로 옛날 고려장터가 많이 있고 지금도 도굴꾼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무수리(無愁里)[마을] : 잣정이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 은 풍수지리학상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다하여 무 수리(無袖里)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무수리(無愁里)라 부른다 한 다. 무시덕골[골] : 무수동이라고도 하는 골짜기인데 고려장터가 많 고 옛날 바둑판이 묻혀있다 하여 지금도 도굴쭌들이 모여둔다고 한다. 박봉[산] : 잣정이 동쪽에 있는 산으로 봉황산이라고도 부른다. 밤아니재[고개] : 상고에서 전북 완주군 운주면 승티리(昇峙里) 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인데 산길이 험하여 옛날에는 혼자서 이 산길은 넘어다니지 못하였다 하며, 길이 좁고 험하여 낮에도 밤 과 같이 어둠침침하다 하여 밤아니재라 부른다고 한다. 백촌리(柏村里)[마을] : 인내 서남쪽 양촌면 석서리 새말로 가 는 중간에 있는 마을인데 잣정이라고도 한다. 벌말[마을] : 상고 동북쪽 벌판에 있는 마을로 평촌이라고도 한 다. 봉우재[산] : 임화리 뒤에 있는 산으로 장자봉이라고도 한다. 봉황리[마을] : 잣정이 북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봉황산이 있어 봉황리라 하며 노가티라고도 한다. 봉황산(鳳凰山)[산] : 잣정이 동쪽에 있는 산인데 산의 형태가 봉황과 같다하여 봉황산이라 부르며 박봉이라고도 부른다. 빈곡(賓谷)[마을] : 상고리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빈골이 라고도 부른다. 빈골[마을] : 빈곡이라고도 하며 상고리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빼재[마을] : 임화리 남쪽에 있는 빼재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다. 빼재[고개] : 임화리에서 전북 완주군 운주면 수청리로 넘어가 는 고개로 좁은 골짜기가 8km를 올라가야 겨우 산을 빠져 나가 는 험한 고개인데 산길을 빠져 나가기가 힘이 든다하여 빠재라 하던 것이 변하여 빼재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수티라고도 한다. 삼열녀문(三烈女門)[정려] : 빼재 앞에 있는 열녀문으로 광산김 씨의 조모, 시어머니, 며느리 3대의 열녀문이다. 상고(上高)[마을] : 임화리 위쪽에 있는 마을인데 임화리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이다. 상고리, 고산임화라고도 부른다. 상고리(上高里)[마을] : 임화리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고․ 고산 임화라고도 한다. 새터[마을] : 잣정이 북쪽 들가에 새로된 마을로 신기 또는 신교 리라고도 한다. 새터[마을] : 봉황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선인봉(仙人峯)[산] : 무수리 서쪽 뒤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수려하여 선인과 같다고 한다. 옛날 여기에는 선인들이 내려와 놀러가는 지대로 선인들이 내려올때는 은하수가 만발하고 선인봉 을 떠날때는 별똥이 자주 지는 날이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수리개재[고개] : 수리미재 아래에 있는 고개이다. 쇠통골[골] : 고산임화에서 남쪽 1.5km쯤에 있는 골짜기인데 한 지점에서 찬바람이 나와 하절기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수리미산[산] : 높이가 321m로 상고 서쪽에 있는 산이다. 수리미재[고개] : 수리미산 아래에 있는 고개이다. 수티(秀峙)[고개] : 임화리 남쪽에 있는 큰 고개로 빼재라고도 한다. 신교리(新郊里)[마을] : 잣정이 북쪽 들가에 새로된 마을로 새터 라고도 한다. 신기(新基)[마을] : 신교리 또는 새터라고고 하는데 잣정이 북 쪽 들가에 있는 마을이다. 잣정이[마을] : 인화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이 마을에는 잣나무 가 정자처럼 서 있다. 인내 서남쪽 양촌면 석서리 새말로 가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촌리라고도 한다. 장자봉[산] : 임화리 뒤에 있는 산으로 봉우재라고도 한다. 절골[터] : 옛날 큰 절이 있었던 절터로 고산임화에서 남서쪽 약 1.5km 지점에 있다. 지금도 기와조각, 사기편, 주춧돌 등이 나오고 있다. 정문거리[길] : 삼열녀문이 있는 길거리를 정문거리라 부른다. 지방골[골] : 상고 서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옛날 광산김씨댁의 3 열녀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평촌(坪村)[마을] : 상고 동북쪽 벌판에 있는 마을인데 벌말이라 고도 한다. 한봉산[산] : 노가티 북쪽에 있는 산이다. 뜸터[산] : 고산 임화에서 남쪽으로 1.5km 쯤에 있는 산인데 옛 날 이여송이가 이곳에 와서 뜸을 뜬 지점이라 하여 지금도 움펑 파여 있다. ▶가장 뛰어난 사람만 사는 상고(上高) 양촌면 임화리에 상고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 사 람들은 싸움을 자주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마을에 어지신 분이 나타나 싸움을 말리기 시작하자 점차로 화목해 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자 이제는 이웃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마을이 되 었다. 그래서 어지신 분은 이 마을이야 말로 가장 뛰어난 사람들 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상고」라 지어 주었다고 하 며, 옛날에는 전라도 고산땅이었으므로「고산임화」라고도 부른 다. ▶노(盧) 장자가 살던 노가티 양촌면 임화리에 노가티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마을 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서 돈 을 물쓰듯 하였다. 그래서 한양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이길래 돈을 그렇게 물쓰듯 하느냐?」 라고 물으니 「충청도 노가티의 주인이요.」 라고 하였다. 이후부터 부자를 평할때에는 「노가티의 주인이냐?」 라고 하는말이 생겨 났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