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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리(金谷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금곡리(金谷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21 조회 1518
첨부  
 
은진군 구자곡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촌
리(西村里), 무동리(武洞里), 화석리(火石里)의 각 일부와 전라
북도 여산군(礪山郡) 피제면(皮堤面)의 신리(新里) 일부를 병합
하여 금곡사우(金谷祠宇)의 이름을 따서 금곡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1월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외었다.

행정구역은 금곡1, 2, 3, 4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688세대에
2,374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현재) 자연부락은
동촌, 모청이, 무데기, 서촌, 신촌, 화석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감나무골[골] : 서촌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개무덤[묘] : 말무덤 옆에 있는 무덤으로 견훤의 개의 무덤이라
고 한다.
견훤왕묘(甄萱王墓)[고적] : 서촌과 모청이 사이에 있는 큰 무덤
으로 지름 30척, 높이 15척의 규모인 묘로 후백제왕 견훤의 묘라
고 전해오고 있다. 후백제완 견훤이 그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감금당한 후 빠져나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투항하여 왕건과 함
께 신검을 친 후 황산불사에서 죽을 때 유언하기를 “내다 죽거
든 완산(현 전주)이 보이는 곳에 묘를 써달라”고 하여 완산이
보이는 이 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금곡서원(金谷書院)[고적] : 금곡리 347번지에 있는 서원으로 만
치당 김수남(金秀南)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1687년(숙종)에 가야
곡면 조정리에 금곡사를 신축 선생의 위패를 봉안 제향해 오다
가 1690년(숙종1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후 매죽헌 성
삼문, 송재 조계명 양선생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5년) 대원
군 서원 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7년 서원을 재건하여 오
늘에 이르고 있다.
단소(壇所)[고적] : 금곡서원 내에 단소가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하여 1868년 금곡서원이 철폐되자 유림들의 공
의로 만치당 김수남 선생, 매죽헌 성삼문 선생, 송대 조계면 선
생의 단소를 설치하고 금곡서원이 재건되기까지 여기에서 춘추
로 제향을 봉행하였다.
닭다릿들[버덩] : 논산 제2훈련소 연무대가 있는 버덩으로 이곳
에서 옛적의 말방울, 말굽쇠 등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정조때 이인(異人) 이서구(李書九)가 전라감사가 되어 이곳을
지나다가 보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서 길 위로는 옥관
자(玉冠子)가 서말이 나고, 길 아래로는 겉보리 천석이나리라.”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 육군 훈련소가 되어 훈련병들이 아침에 나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 마치 병아리떼 같으므로 그 말이
맞았다고들 한다.
동촌(東村)[마을] : 서촌 동쪽에 새로된 마을이다.
만치당정려[고적] : 금곡리 금곡서원 앞에 있는 만치당 김수남
(萬癡當 金秀南)의 충신정려이다. 김수남은 병자호란때 왕가(王
家)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갔으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남루(南
樓)에서 분사(焚死)하였다. 효종때 승지에 추종되고 1681년(숙종
7년) 8월에 정려를 세웠다.
말무덤[무덤] : 동촌 뒤에 있는 큰 무덤을 말무덤이라고 하는데
견훤의 말을 묻은 무덤이라고 전한다.
모청(暮聽)[마을] : 모청이라고도 하는데 서촌 남쪽 모퉁이에 있
는 마을이다.
모청이[마을] : 서촌 남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로 모퉁이라 하였
는데 인조때 충신 만치당 김수남이 이곳에 강당을 짓고 후진들에
게 교육할 때 글 읽는 소리가 밤늦도록 들리므로 해가 져도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모청(暮聽) 또는 모청이라 부르게 되었
다고 한다.
무데기[마을] : 무동이라고도 하는데 화석 남쪽 들 건너 쪽에 있
는 마을이다. 예부터 돌무데기가 있었다고 하며 이곳에서는 무사
가 많이 배출된다는 전설도 있다.
무동(武洞)[마을] : 화석 남쪽 들 건너쪽에 있는 마을로 무데기
라고도 한다. 국도를 내려가면서 도로 위 동쪽마을은 옥관자수
의 마을이고 길 아래 마을은 보리씨가 세섬인 마을이며, 무동은
무관이 난다고 전해 오는데 현재 동쪽에는 제2훈련소가 있어 무
관이 많이 나와 예부터 전해오는 말이 맞다고들 한다.
서촌(西村)[마을] : 화석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촌(新村)[마을] : 무데기 옆 동쪽에 있는 마을로 육군 제2훈련
소인 연무대 서쪽이 되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촌이라 부
른다고한다.
왕묘(王墓)[고적] : 견훤묘를 왕묘라고도 부른다.
자라둠벙[못] : 모청이 서쪽에 있는 못인데 자라바우가 있어 자
라둠벙이라 한다.
자라바우[바위] : 자라둠벙 뒤에 있는 못인데 자라바우가 있어
자라둠벙이라 한다.
칠년 고라실[골] : 서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칠년 고라실이라
고 하는데 이곳은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여 1년 농사를 지어 7년
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여 칠년 고라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화석(火石)[마을] : 동촌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화석이 많이 나
오고 있다 한다.
화석교(火石橋)[다리] : 화석마을 앞에 있는 다리이다.
충노무작김지비(忠奴無作金之碑)[비] : 금곡리 충신 김수남 정
려 앞에 있으며 김수남의 충노(忠奴)로써 김수남이 강화에서 순
국하자 시체를 난중에서 업어 왔던 무작김의 비이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