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전리(麻田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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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21 | 조회 | 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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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공촌면(公村面)의 지역으로 삼밭과 내
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삼밭내 또는 마전(麻田)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야등리(野登里), 승지리(僧池里), 신량리(新良里), 구량리(舊良里), 장항리(獐項里), 송화리(松花 里), 고분리(古分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익산군(益 山郡) 황화면(皇華面)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1월1일 연무읍이 승 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마전1, 2, 3, 4, 5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387세대 에 1,31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현재) 자연부락 은 구량리, 난바람, 노루목, 도화동, 주촌, 밧들, 사기동, 삼밭 내, 새터, 승지리, 신량리, 양재, 욱골, 왜가리터 등이 있다.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구량리(舊良里)[마을] : 마전리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양재의 원 마을이다. 난바람[마을] : 승지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노루목[마을] : 승지리의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 형태가 마 치 노루의 목과 같이 생겼다하여 노루목 또는 장항이라고도 부른 다. 도화동(桃花洞)[마을] : 승지리의 옆에 있는 마을인데 이마을에 는 옛절터가 있다. 들황화정[마을] : 밧들이라고도 하는데 승지리의 북쪽에 있는 마 을이다. 마전리(麻田里)[마을] : 신량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주촌이라고 도 부른다. 밧들[마을] : 승지리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황화정동의 바깥들 에 있다하여 바깥들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밪들이라 부르게 되 었다고 하며, 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들황화정 또는 야황리라 고도 부른다. 사기동[마을] : 새터 옆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곳에는 사기점 이 있었다고 한다. 삼밭내[마을] : 신량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삼밭이 많이 있 었고 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삼밭내라 부른다고 한다. 새터[마을] : 승지리 서북쪽에 새로된 마을인데 신기 또는 점촌 이라고도 한다. 승지(僧池)[못] : 승지리 앞에 있는 못인데 어떤 처녀가 중과함 께 빠져 죽은 못이라고 하며 중의 못이라고도 한다. 승지리(僧池里)[마을] : 중의못이라고도 하는데 주촌 북쪽에 있 는 마을이다. 승지저수답(僧池貯水沓)[논] : 승지 앞에 있는 1,500여평의 논으 로 겨울, 봄에 물을 가득 가두어 두었다가 모를 심을 때 이물을 대어 모를 심는다고 한다. 물을 가두었을 때에는 마치 저수지와 같다하여 승지저수답이라 부른다 한다. 신기(新基)[마을] : 새터라고도 하는데 승지리 서북쪽에 있는 새 로된 마을이다. 신량리(新良里)[마을] : 양재 서쪽에 새로된 마을로 지함이 고개 라고도 한다. 야황리(野皇里)[마을] : 밧들 또는 들황화정이라고도 하는데 황 화정동 바깥들에 있는 마을이다. 양재(良才)[마을] : 마전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이조때 이마을 에 양재역이 있었다고 하며 삼례도찰방(參禮道察訪)에 딸려 있었 으므로 양재 또는 역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골(玉骨)[마을] : 노루목 서쪽 옥골 방죽 옆에 있는 마을이다. 옥골방죽[목] : 노루목 서쪽 옥골에 있는 방족으로 옥골제라고 도 한다. 옥골제(玉骨堤)[못] : 옥골 방죽이라고도 하며 노루목 서쪽 옥골 에 있다. 왜가리터[마을] : 밧들 옆에 있는 마을로 옛날엔 왜가리가 이마 을에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왜가리가 모여 사는 마을은 풍년 이 든다고 하는데 왠지 이마을엔 흉년이 계속 들었다고 한다. 그 런데 일제시 침략이 심해지자 왜가리들도 어디로 사라져갔는데 그후부터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장항(獐項)[마을] : 승지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노루목이라고도 한다. 점촌[마을] : 새터라고도 하는데 승지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 다. 주촌(朱村)[마을] : 신량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주씨가 많 이 살았다하여 주촌 또는 삼밭이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전 리라고도 부른다. 중의못[마을] : 주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중의못이 있다하여 중 의못 또는 승지리라고도 한다. 중의못[못] : 승지리 앞에 있는 못으로 옛날 중이 빨래하던 처녀 를 겁탈하려 하자 함께 빠져 죽은 못이라 하여 중의못이라 부른 다고 한다. 지함이고개[마을] : 신량리라고도 하는데 양재 서쪽에 새로된 마 을이다. 지함이고개[고개] : 신량리에 있는 고개로 임진왜란때 이곳에 함 정을 파서 왜적을 방어했다하여 지함이고개라 부른다한다. ▶중이 빠져 죽은 중의못 연무읍 마전리 승지리 앞에 중의못이라고 하는 못이 있다. 옛 날 이 마을에 한처녀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날 못 에 가서 혼자 빨래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이 덮치더니 겁탈 하려고 했다. 처녀는 이런 수모를 견딜 수 없어 중을 붙들고 연 못 속으로 빠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못을 중이 빠져 죽은 못 이라 하여 「중의못」이라 부르게 되었고 마을 이름도 「중의 못」이라 부른다고 한다. ▶함정을 만들었던 지함이 고개 연무읍 마전리에 지함이 고개라고 하는 곳이 있다. 임진왜란때 의 일이다. 이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호남지방으로 가려고 하 는 왜놈들과 싸우게 되었다. 무기가 없어 같이 싸울 수도 없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에 함정을 만들어 놓고 왜놈들이 오 기만을 기다렸다. 왜놈들의 무리들이 한놈 두놈 빠지기 시작했 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함성과 함께 달려들어 왜놈들과 싸워 크 게 이겼다. 이리하여 이 고개를 함정을 만들었던 고개라 하여 지 함이 고개라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