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양지리(陽地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양지리(陽地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6-03 조회 1240
첨부  
 
은진군 구자곡면 지역으로 매화산(梅花山) 아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편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
라 마산리(馬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양지리라 하고 논산군 구자
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1일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
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양지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57세대에 555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감바
우, 구억갱이, 구억말, 당산말, 발화지, 양지편, 중말 등이 있
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감바우[마을] : 중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마을에는 큰 바위가
있다.
감바우 모퉁이[모퉁이] : 감바우로 가는 모퉁이를 말한다.
구억갱이[마을] : 구억말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구억말[마을] : 양지편 서쪽 구석에 있는 마을이다.
남좌수묘(南座首墓)[묘] : 매화산 서북쪽에 있는 큰 무덤을 말한
다. 풍수지리가의 말이 이묘를 쓴후에 장군이 나고 홍보가 나거
든 이장하라고 하였다한다. 그러나 장군이 나고 홍보가 났어도
이장하지 않아서 이묘가 지금까지 묵는다고 전해온다.
당산말[마을] : 양지편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당산촌이라고도 한
다. 옛날 이마을에는 매화당(梅花堂)이 있었다고 한다.
당산촌(堂山村)[마을] : 당산말이라고도 하며 양지편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매화당골[골] : 옛날 매화당이 있었던 골짜기이다.
매화당터(梅花堂)[터] : 매화산이 있었던 신당터로 매화산성을
쌓은 백제 제8대 고이왕(고이왕)의 셋째딸 매화공주를 제사지내
던 매화당이 있었던 터이다.
매화산(梅花山)[산] : 양지편 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370m이
다. 백제 제8대 고이왕의 셋째딸 매화공주가 문무재(文武才)를
겸하여 신라를 치기위해 이산에다 성을 쌓았다하여 매화산 또는
매화산성이라 부른다 한다.
매화산성(梅花山城)[산] : 매화산이라고도 하며 양지편 남쪽에
있는 높이 370m의 산이다.
바라지[마을] : 지형이 바라졌다하여 바라지라 부르게 되었다하
며 지금은 발화지라고 부른다.
발화지(發花枝)[마을] : 중촌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바라
져 있으므로 바라지라 하던 것이 변하여 매화가 피는 뜻으로 발
화지라 부른다고 한다.
소반칭이[들] : 양지편 입구에 있는 들을 말한다.
절골[골] : 양지편 뒤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한
다.
중말[마을] : 양지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편과 감바우 중
간에 있는 마을이다.
중촌(中村)[마을] : 중말이라고도 하며 양지편 서북쪽에 있는 마
을이다.
역적날[산] : 등토산은 명당자리로 유명하지만 등토산 등성이는
역적날이라 부른다.

▶ 매화산성(梅花山城)

연무읍 양지리 매화산에 매화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동서 약
600m, 남북 약 300m정도의 포곡형(包谷形) 석축산성(石築山城)으
로 남북 산봉에는 보루(堡壘)가 있다. 백제 토기편이 많이 나오
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 대굴터 사지(寺址)

연무읍 양지리에 대굴터 사지가 있다. 이 사지는 매화산의 북
향 구릉이 남동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면적은 약 100여평으로 절에 대한 유적은 거의 없다. 단지
건물지에 기와편이 흩어져 있도 석축으로 꾸민 원형의 우물터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절은 암자형의 절로 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에까지 있었
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