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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리(官洞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관동리(官洞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6-03 조회 1257
첨부  
 
백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의 5만 군대가 황
산벌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신라의 화랑 관창(官昌)이 단독으로
쳐들어와 생포한 계백은 어림과 용기를 가상히 여겨 살려보내니
또다시 쳐들어와 칼로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어 돌려보냈는데 그
곳이 이곳이라 하여 관창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광청골 또는
관동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 식한면(食汗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교촌(校村) 일부를 병합하여 관동
리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관동 1, 2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115세대에 405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자연부락은 관창
골, 향교골, 상관, 중뜸, 하관 등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무재봉골[골] : 관동리 서북쪽 함지봉과 북쪽의 선밭날 사이
의 골짜기로 백석리로 넘어가는 골짜기이다.
관동(官洞)[마을] : 관창골 또는 관동리라고도 하는데 아래관
동, 중뜸, 위관등이 있다.
관동교(官洞橋)[다리] : 관동리 남쪽에 있는 다리로 연산리 사이
에 있다.
관적골[골] : 관동리 서북쪽 함지봉 아래의 평편한 곳을 말한다.
관창골[마을] : 백제와 신라와 황산벌에서 격전을 벌릴 때 신라
의 관창을 생포하여 살려 보낸곳이 이곳이라 하여 관창골 또는
관동, 관동리라 한다.
관청골[마을] : 관동리 또는 관창골 이라고도 한다.
교촌(校村)[마을] : 연산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하여 교촌 또는
향교골이라고도 한다.
꽃밭재[산] : 관동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산이다.
농바위[바위] : 관동리 북쪽에 있는 바위인데 형태가 마치 장롱
처럼 생겼다 하여 농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대부뚝[보] : 연산천 옆을 가로막고 있는 뚝이다.
마당바위[바위] : 열녀비 모퉁이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마치 마
당처럼 평편하고 넓다고 한다.
밑밭골[산] : 관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북쪽 뒤편에 선밭날이 있
다.
범골[골] : 관동 북쪽 밑밭골과 꽃밭재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이 고개를 넘으면 송정리 범골 마을이 나온다.
벼락바위[바위] : 향교골에 있는 큰 바위이다.
보무라들[들] : 창래들 동쪽에 있는 들판이다.
비단논들[들] : 관동 남쪽에 있는 들판인데 옛날 논을 살 때 비
단을 주고 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창터[터] : 관동에 있는 사창(社倉)이 있었던 터이다.
산제골[마을] : 교촌 또는 향교골이라고도 하는데 연산향교에서
제사를 지낸다하여 산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상관(上官)[마을] : 관동 위쪽에 있는 마을로 위관동 이라고도
한다.
선밭날[산] : 관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206m이다.
성재[산] : 관동리와 표정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날 성이 있었
다 하여 성터라고도 한다.
성터[산] : 관동 서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267m 이며 옛날 성이
있었다 하여 성재라고도 한다.
승적골[골] : 관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성재 아래에 있다.
아래관동[마을] : 하관이라고도 하는데 관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
이다.
아래뜸[마을] : 중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어필각[사당] : 뒷말림에 있는 성주 도씨의 사당이다.
여단터(厲壇)[터] : 관동 남동쪽에 있던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제사 지내던 여제(厲祭)의 단(壇)이 있던 터이다.
여제단터(厲祭壇)[터] : 여단처라고도 하며 여제의 단이 있던 터
이다.
연산천(連山川)[내] : 관동리 남쪽에 흐르는 내로 관동리와 연산
리 사이를 흐르고 있다.
연산향교(連山鄕校)[고적] : 향교골에 있으며 조선태조7년(1398
년)에 창건하였고, 5성(聖) 22현(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춘
추로 제향하고 있다.
열녀비모퉁이[거리] : 관동리 동쪽 보무라기들로 가는 길거리
로 옛날 여기에 열녀비가 있었다고 한다.
위관동[마을] : 상관이라고도 하며 관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위뜸[마을] : 중뜸 위에 있는 마을로 선밭날 남쪽에 있다.
장성백이[거리] : 장승백이라고도 하는데 하관 남쪽 아랫편에 돌
장승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장성백이들[들] : 하관 아래쪽에 있는 들이다.
장승백이[거리] : 장성백이라고도 하는데 하관 남쪽 아랫편에 돌
장승이 서 있는데 지금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장승제를 올리고
있다.
장승백이들[들] : 장승이 서 있는 하관 아래쪽에 있는 들로 장성
백이들 이라고도 한다.
중뜸[마을] : 위뜸과 아랫뜸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창래들[들] : 장승백이들 아래쪽에 있는 들로 연산천이 흐르고
있다.
하관(下官)[마을] : 관동 남쪽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아래 관동
이라고도 한다.
함지봉(咸芝峯)[산] : 관동리 서북쪽에 있는 산인데 높이 387m이
다.
향교골[마을] : 연산 향교가 있는 마을로 교촌 이라고도 한다,
황산성(黃山城)[성] : 관동 서쪽 성재를 중심으로 쌓은 성으로
석성(石城)으로 백제때 쌓은 산성이다.

▶정절의 여인 도미(都彌)의 아내

도미는 백제 개루왕때 사람으로 성품이 어질고 의리가 있는 사
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용모가 뛰어나고 절개가 굳기로 이름나
있었다. 어느날 왕은 가짜왕을 만들어 도미의 아내를 희롱해보라
고 했다. 그러나 도미의 아내는 기지로 이를 모면하였다. 왕은
그 여인의 슬기에 속은 것이 괘씸하여 도미의 두 눈을 빼고 조각
배에 태워 강물에 띄었다.
도미의 아내는 강가로 나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 조각배에
남편이 실려서 떠내려 오고 있었다. 비록 남편은 앞을 못보지만
정성껏 간호하여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도미의
후손들은 연산면 관동리에 대대로 살면서 그 부덕을 기리고 있
다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