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호리(天護里)-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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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6-04 | 조회 | 1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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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리는 본래 연산군 식한면(食汗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태리(開泰里), 호동(虎洞), 화악리(花岳 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천호산의 이름을 따서 천호리라 하 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천호1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77세대에 20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개태, 광 석, 옥녀동, 절텃골, 청룡말 등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마솥[고적] : 개태사 경내에 있는 주철로된 솥으로 개태사 철 확 또는 철솥, 대부, 대철이라고도 한다. 갓모배미[논] : 장구배미 위에 있는 논인데 모양이 마치 갓모 같 이 생겼다고 한다. 개태(開泰)[마을] : 천호리에서 가장 큰 마은인데 개태사가 있 다. 개태사(開泰寺)[절] : 천호산 밑에 있는 절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창건한 국찰이었으며 후에 도광사라 했다가 지금은 개태사라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미륵삼존불과 개태사 철 확(가마솥)등이 있다. 개태사 철확(開泰寺 鐵鑊)[고적] : 승려들의 장을 끓이던 것으 로 직경 3m, 높이 1m, 둘레 9m의 초대형 주철 가마솥으로 현재 개태사 경내에 보전되어 있다. 광석(廣石)[마을] : 광석역이 있는 마을로 1940년 호남선 기차역 인 광석역이 생기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광석역(廣石驛)[역] : 개태사 앞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으로 두계 역과 연산역 사이에 있다. 대부(大釜)[고적] : 개태사 경내에 있는 주철로 되어 있는 가마 솥으로 개태사 철확이라고도 한다. 대철(大鐵)[고적] : 개태사 경내에 있는 철확으로 대부, 가마솥 이라고도 한다. 꿩고지[골] : 옥녀동(玉女洞) 북쪽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너멍골[골] : 개태사 북쪽 너머에 있는 골짜기이다. 도광사(道光寺)[절] : 1930년 김광영(金光榮) 여승이 개태사의 오층탑과 석불을 세우고 절을 세워 도광사라 하였다. 후에 본래 의 명칭인 개태사라 하였다. 돌구수[고적] : 절텃골에 있는 돌로 되어 있는 구유로 길이가 9m 인 장석(長石)으로 된 것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 밑에 묻혀있 다 한다. 개태사지 석조라하여 문화재 자료 제275호로 지정되어 있다. 둠벙배미[논] : 개태사 앞 철길 서쪽에 있는 논으로 전에 둠벙 이 있었다하여 둠벙배미라 부르며 개태사의 큰 가마솥 뚜껑이 묻 혀 있다고 전한다. 들샘[우물] : 개태사 앞 들에 있는 우물이다. 매봉[산] : 개태사 앞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영특한 매와 같이 생겼다 하며, 고려 태조 왕건이 성난 매처럼 후백제를 치며 독전 했던 곳이라 하여 매봉 또는 매봉제라 부른다. 배봉재[산] : 매봉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형태가 마치 매와 같이 영특하게 생겼다고 한다. 물탕골[골] : 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바위 틈에서 약수가 나 온다. 옛날엔 선녀들이 내려와 거문고를 타며 놀다가곤 하였는 데 선녀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천년묵은 이무기가 물탕을 쳐서 선녀들이 놀던 자리를 없앴다 하여 물탕골이라 한다. 부처거리[길] : 개태사 앞에 있는 길거리로 개태사에 부처가 있 다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삼석불(三石佛)[고적] : 개태가 경내에 있는 미륵 삼존석불을 말 한다. 생부처거리[길] : 들샘 남서쪽에 있는 길거리 인데 여기에 부처 가 있었다고 한다. 석조(石槽)[고적] : 화강석으로 파서 만든 이석조는 개태사 주방 에서 물탱크로 사용했던 것으로 돌구수라고도 한다. 선바위[바위] : 개태사뒤 천호산 기슭에 있는 바위로 마치 사람 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선바위 는 중이 고깔을 쓴 것 같은 형상으로 북쪽을 향해서 있고 옆에 는 샘이 있다. 성내평(城內坪)[들] : 성안들이라고도 하는데 광석역 앞에 있는 들이다. 성너머[골] : 청룡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옛날의 큰 성터 너 머 마을이다. 성너머가 변하여 성너미라고도 한다. 성뚝[고적] : 성터라고도 하는데 치굿재에서 청룡말까지 마을 뒤 에 있는 험한 산기슭을 싼 성터이다. 성안들[들] : 광석역 앞에 있는 들로 성내평이라고도 부른다. 성지(城址)[고적] : 성뚝 또는 성터라고도 하며 마을 뒤 험한 산 기슭을 둘러싼 성터이다. 성터[성지] : 치굿재에서 청룡말까지 마을 위에 있는 험한 산기 슭을 둘러 쌓았던 성터로 지금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 둘레 안에는 개태사를 비롯한 여러 절터가 남아 있으며 성뚝, 성지라 고도 부른다. 세귀[석교] : 개태사 입구에 있는 석교(石橋)를 세귀라 부른다. 옛날 개태사 입구에 큰 하천이 있었는데 이곳에 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는 비만 오면 떠내려가 용왕제, 산신제를 지내 고 돌로 다리를 놓으니 재난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돌로 다리를 놓아 석교라 부르던 것이 세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세돌부처[불상] : 미륵 삼존 석불로 개태사 경내에 있는 세 돌부 처이다. 소리개 바위[바위] : 통소 바윗골 위의 골짜기에 있는 바위로 모 양이 솔개처럼 생겼다하여 소리개 바위라 부른다. 소리개바위골[골] : 소리개 바위 아래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을 소리개 바위골이라 부른다. 술할미[고적] : 장군수 앞에 돌사람을 술 할미라 부른다. 두꺼 비 모양에다 사람을 새기었다. 오층탑(五層塔)[고적] : 개타사 앞에 있는 탑으로 북쪽 절골에 있던 것을 1964년에 옯겼다 한다. 옥녀동(玉女洞)[마을] : 천호산 밑에 있고 개태사 뒤에 있는 마 을로 뒤에 옥녀봉이 있고 그 밑에 옥녀샘이 있다. 고려 대조 왕 건의 꿈에 이곳에서 옥녀란 선녀와 놀았다 하여 옥녀동이라 부른 다 한다. 또 옥녀란 선녀가 베를 짠 곳으로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옥녀봉(玉女峯)[산] : 천황봉 뒤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옥녀샘[우물] : 옥녀동에 있는 우물로 매우 깨끗하다. 옥녀천 이 라고도 한다. 옥녀천(玉女泉)[우물] : 옥녀샘이라고도 하며 옥녀동에 있는 우 물이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