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천호리(天護里)-2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천호리(天護里)-2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6-04 조회 1114
첨부  
 
▶자연부락

장구배미[논] : 개태사 앞에 있는 논으로 마치 장구같이 생겼다
하여 장구배미라 부른다.
장군바위[바위] : 바위 틈에서 물이 나오는데 이물을 장군수라
고 하며, 이바위를 장군바위라고 한다. 옛날에는 바위문을 열고
물을 떠 먹고 닫고 하였다고 한다. 그 안에 복조개가 있다고도
전한다.
장군수(將軍水)[우물] : 치굿재에 있는 우물로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데 그 물이 좋아서 이물을 먹으면 힘이 세어져서 장
군이 된다고하며 이물이 빨개지면 그해 홍수가 난다고 한다.
장터[시장터] : 함박들에 있는 옛날 시장터이다.
절골[마을] : 절텃골이라고도 하는데 개태사 북쪽에 있는 마을이
다. 옛날 여기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텃골[마을] : 개태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엔 절이 있었다
하며 지금은 돌구유가 남아있다. 큰 절이 있어서 중과 불교 신자
들이 많이 오고 갔다하여 절텃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절
골이라고도 한다.
정자나무[나무] : 개태사 북서쪽 개태와 옥녀봉 사이에 있는 정
자나무이다. 산 끝에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돌로 대(臺)를 쌓고
바위에「팔원정(八元亭)」이라 새기져 있다. 옛날엔 시인, 묵객
과 중들이 황산벌을 찾아 왔다가 쉬어간 곳이라 한다.
천왕봉(天王蜂)[산] : 천호산이 가장 높은 봉우리로 천황봉이라
고도 한다.
천호산(天護山)[산] : 높이 352m로 산이 길게 6km쯤 남쪽에서 북
쪽으로 뻗어가는 누르기재 또는 황산이라 하였는데 고려 태조 왕
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하느님이 보호해 주신 산이라 하여 천
호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천호산 약수(天護山 藥水)[우물] : 천호산 중턱에 있는 약수로
예부터 천호산의 약수는 영천(靈泉)에서 솟는 물이라 하여 단
오, 칠석, 추석이면 수백명이 목욕하곤 했다한다. 여기서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한 사람은 약수근처의 나무에 댕기를 걸고 간다
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약수가 고목나무 뿌리를 적셔서 약수
가 되었다하여 액운을 비는 뜻이다.
천황봉(天皇峯)[산] : 개태사 뒤에 있는 봉우리로 천호산의 가
장 높은 봉우리인데 왕건이 후백제군사와 싸울 때 매들이 많이
몰려와서 천황봉 지네를 모두 잡아 먹고 천하를 통일 하는데 기
여 했다하여 천황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철솥[고적] : 개태사 경내에 있는 주철로 되어 있는 가마솥으로
대부, 철확이라고도 한다.
청룡말[마을] : 개태 왼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산 속에 청룡
이 살고 있어 언젠가는 청룡이 하늘로 오르면 마을이 번성한다
는 전설이 있다.
치굿재[산] : 절텃골 북동쪽에 있는 산이다.
탑밭[밭] : 절골에 있는 밭으로 탑전이라고도 부른다. 오층탑이
있었는데 1964년에 개태사 경내로 옮겼다 한다.
탑전[밭] : 탑밭이라고도 하는데 개태사 5층탑이 여기 있었다고
한다.
통수바위[바위] : 함박보 서쪽에 있는 바위인데 모양이 통수와
같다 한다.
통수바위골[마을] : 통수바위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팔각당[절] : 석불 동남쪽 마당에 있는 절로 여덟모로 되었는데
시렁위에 동자부처를 모셨다.
함박들[들] : 광석역 앞에 있는 들로 함박보가 있다.
함박보[보] : 합박들에 있는 보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선녀와 놀던 옥녀동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기쁨을 함께 나누고 기념
하기 위해 군사들과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천호
산 산봉우리에서 꽃마차를 타고 선녀들이 내려오는 것이었다. 선
녀들은 왕건옆에 멈추더니 밤이 늦도록 하께 즐겁게 놀아 주었
다, 자정이 되었을 무렵 선녀들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깜
짝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왕건은
「내가 선녀들과 놀던 여기를「옥녀동」이라 부르도록 하라.」
라고 하여 이때부터 옥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고려 태조 왕건이 상으로 준 천호리와 화악리 느티나무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개태사를 창건하고 국찰
로 명하였다. 왕건은 개태사를 짓는데 공이 큰 두 사람을 불러
느티나무 한그루씩을 상으로 내렸다. 두 사람은 각각 자기집 근
처에 심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면서 서로 의형제를 맺고 도우며
살아갔다.
그후 형은 옥동자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동생 역시 왕이 내
려준 나무를 정성껏 가꾸어 무성하게 자랐다. 어느날 왜적들이
이 마을에 침입라여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고기를 굽고 술상을
차려 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그때 그 나무를 심은 동생은 참다못

「저 악한 자들에게 벌을 내려 주소서」
하고 빌었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폭퐁우가 휩
쓸더니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그 나무를 향해 벼
락이 내려쳤다.
왜적을은 벼락에 맞아 죽고, 그 이후 이 마을에는 더 이상의 화
는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벼락을 맞아 화상
을 입어 속 부분이 불에 탄 채 텅비어 있다고 한다.

▶ 부녀의 한이 서린 통수바위

옛날 이 마을에 장님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집 규수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님 아내
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어느 총각과 눈이 맞아 집
을 떠나고 말았다.
장님은 어린딸을 등에 업고 젖동냥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는 아내가 생각나면 어린딸을 업고 산마루에 올라가 퉁수를 불었
다. 그럭저럭 세월은 흘러 딸이 자라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딸
을 시집보낸 후에도 장님은 매일 아내를 생각하며 퉁수를 불다
가 죽어갔다. 장님이 죽던날 은비가 내렸고, 천둥번개가 내려 치
더니 장님이 퉁수를 불던 자리에는 바위가 솟아났는데 마치 아기
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장님이 불던 퉁수를 생각해서「퉁
수바위」라 부르다가 변하여「통수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