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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리(表井里)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표정리(表井里)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6-04 조회 1055
첨부  
 
마을에 자갈이 많고 물이 적어서 가뭄이 계속될 때에는 샘물이
말라 식수의 곤란이 많으므로 표정(表井)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
군 백석면(白石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
라 상표리(上表里), 중표리(中表里), 하표리(下表里), 신표리(新
表里), 신범리(新凡里), 당곡리(堂谷里)의 각일부와 외성면(外城
面)의 고양교(高陽橋), 청림리(靑林里)일부를 병합하여 표정리
라 하고 논산군 연산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표정1, 2리로 되어있으며, 인구는 200세대에 691명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당골,
방죽밑, 새범나미, 여우내, 중표, 하표 등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그메봉[산] : 깃대봉이라고도 하며 표정리 동쪽에 위치한 산이
다.
깃대봉[산] : 표정리 동쪽에 있는 큰 산으로 높이 310m이며 표정
리와 관동리 사이에 있는 산이다.
난민촌[마을] : 해방과 더불어 만들어진 마을로 6.25 동란때 피
난민들이 모여 상행위를 하며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당곡(堂谷)[마을] : 당골이라고도 하며 상표 북쪽에 있는 마을이
다.
당골[마을] : 상표 북쪽에 있는 마을로 당곡이라고도 한다. 옛
날 이마을에 산제당이 있었고 여기에서 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박우물샘[우물] : 하표정에 있는 우물인데 물이 많고 좋다고 한
다.
방죽밑[마을] : 상표라고도 하며 중표 동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
이다.
방죽말[마을] : 중표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여기에 방죽이 있
었다고 한다.
산적골[골] : 가그메봉과 시루봉 사이에 있는 골따기이다.
상표(上表)[마을] : 중표 동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방죽말이라
고도 한다.
새범나미[마을] : 하표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임리의 범나미 북
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식범 또는
신호, 신범남이라고도 부른다.
서안[산] : 성재라고도 하며 깃대봉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성재[산] : 서안이라고도 하며 깃대봉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로
높이 267m이며 깃대봉과 시루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이다.
성재바위[바위] : 역적날과 깃대봉 사이에 있는 큰 바위이다.
쇠스랑개들[들] : 표정리 서쪽에 있는 들이다.
시루봉[산] : 표정 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형태가 마치 떡시루
와 같다하여 증봉이라고도 한다.
신범(新凡)[마을] : 새범나미라고도 하며 하표 남서쪽에 있는 마
을이다.
신표(新表)[마을] : 여우내라고도 하며 하표 동남쪽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신호(新虎)[마을] : 새범나미라 또는 신범이라고도 하며 하표 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여우내[마을] : 하표 동남쪽에 옆에 새로된 마을로 신표라고도
한다.
역적날[산] : 표정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288m로 함지붕 서
쪽 앞에 있는 산으로 옛날 역적이 나왔다고 한다.
왕덕들[들] : 왕드기보들이라고도 하는데 표정리 남쪽 와드기보
근처에 있는 들이다.
왕드기보[보] : 표정리 남쪽에 흐르는 내를 막은 보이다.
왕드기보들[들] : 왕덕들 이라고도 하며 왕드기보 근처에 있는
들이다.
중표(中表)[마을] : 표정리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중표리라고도
한다.
중표리(中表里)[마을] : 중표라고도 하며 표정리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다.
증봉(甑峯)[산] : 시루봉이라고도 하며 표정마을 뒤에 있는 산이
다.
질마바위[바위] : 깃대봉과 역적날 사이에 있는 바위로 마치 소
가 짐을 짊어지고 가는 형태라고 한다.
찬샘[우물] : 산적골 아래에 있는 우물로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
는 따뜻하다고 한다.
표정(表井)[마을] : 마을에 자갈이 많고 물이 귀하다고 하여 표
정 또는 표정리라 하였다고 한다.
표정교(表井橋)[다리] : 표정리와 고양리 사이에 있는 다리이다.
하표(下表)[마을] : 중표 서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하표정이라
고도 한다.
하표정(下表井)[마을] : 하표리라고도 하며 중표 서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황산성(皇山城)[성] : 표정리와 관동리 사이에 있으며 해발264m
의 산봉에 있는 석성(石城)으로 백제때의 산성이다.

▶호랑이가 신부를 업고 왔다는 신범

옛날 이 마을에 허생원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결혼을 했는데 신부가 못생겨 정이 뚝 떨어졌다.
첫날밤을 지내고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
랐지만 신부를 부르지를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신부는 한양으
로 올라가 남편을 찾았지만 모른체 하고 내 쫓는 것이었다.
신부는 눈물을 삼키며 시골로 다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다리
가 후들후들 떨리어 한발자욱도 걸을 수가 없었다.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신부를 업고 쏜살같이 달려 이곳까지 와서
는 어디로인지 가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가 신부를 업고
온 마을이라하여「신범」이라 부른다고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