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촌리(校村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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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6-04 | 조회 | 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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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군 송산면(松山面)의 지역으로 예부터 은진 향교가 있었으
므로 향교말 또는 교촌으로 불리었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 역 폐합에 따라 의승리(義承里), 내동리(奈洞里)의 각 일부와 대 조곡면(大鳥谷面)의 북문리(北門里) 일부를 병합하여 교촌리라 하고 논산군 대조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1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논산군 은진면이 되어 이에 소속되었다. 행정구역은 교촌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264세대에 882명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교촌, 난 민촌, 방북리, 방죽거리, 의승골, 향교골 등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교촌(校村)[마을] : 은진 향교가 있는 마을로 교촌 또는 교촌리 라 하였다. 난민촌(難民村)[마을] : 향교골 뒤에 있는 마을로 6.25동란때 이 북에서 집단적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한 마을로 예부터 여 기는 피난지로 이름난 터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촌이 라고도 한다. 1953년 집단으로 옮겨 살았다. 망북리(望北里)[마을] : 향교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 이 마치 제비 새끼가 둥우리에서 북쪽을 바라다 보는 형국이라 한다. 옛날 백제때부터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여기에서 망 을 보았다해서 망북리라 한다. 또한 은진현이 있을때에는 여기에 서 멀리 북쪽을 바라보면 계룡산 부근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항시 관원이 나와 여기에서 망을 보았다고 한다. 방죽거리[마을] : 향교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방죽이 있었다고 한다. 옛날 이곳에는 큰 방죽이 있어서 여기 방죽물로 채운면까지 물을 댓다고 한다. 지금은 방죽은 찾아 볼길 없지만 옛날에 바죽이 있었다 하여 지금도 방죽거기라 부르고 있다. 비석거리[거리] : 은진현이 있을 때 은진 고을의 북문이 있었던 거리로 여기에 은진 현감들의 공적비가 즐비하게 서기 시작하자 비석이 많이 서 있는 거리라 하여 비석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등이 : 방죽거리와 의신동 중간 지점으로 옛날 원이 살았다고 한다. 은진향교(恩津鄕校)[고적] : 향교골에 있는 은진 향교이다. 의승골[마을] : 방죽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의승동이라고도 한 다. 의승동(義承洞)[마을] : 의승골이라고도 하며 방죽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의신동[마을] : 교촌2리로 의승골이라고도 한다. 하마비(下馬碑)[비] : 은진 향교 앞에 있는 비로 옛날부터 말이 나 가마를 타고 여기를 지나 가다가는 말의 다리가 부러진다든 가 사람이 앉은 뱅이가 된다해서 여기를 지나가려면 말이나 가마 에서 내려서 가라고 하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향교골[마을] : 교촌리라고도 하는데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 여 형교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은진 비석거리 비석(碑石) 은진면 교촌리 비석거리에는 지금도 비석 13기가 서 있다. 비석 거리에 서 있는 13기는 관찰사 불망비와 은진현감 불망비가 서 있고 전면에서 우측으로 6번째에 제2훈련소 소장 기념비도 서 있 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