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서리(蓮西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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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논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6-04 | 조회 | 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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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군 대조곡면(大鳥谷面)의 지역으로 은진(恩津) 고을의 터인
데 연정(蓮亭) 서쪽이 되므로 연서(蓮西)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서 상리(上里), 홍문리(弘門里), 북문리(北門 里), 용와리(龍臥里), 백양리(栢楊里), 세피리(世被里)의 각 일 부와 송산면(松山面)의 교촌리(校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연서리 (蓮西里)라 하여 논산군 대조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15년 행정구 역 개편에 따라 논산군 은진면이 되었다. 행정구역은 연서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인구는 240세대에 86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자연부락은 상 리, 백양동, 북문거리, 아랫말, 연동, 연서, 홍문리 등이 있다. ▶ 자연부락 및 지명유래 가운데 고삿[마을] : 상리라고도 하는데 연정 위쪽에 있는 마을 로 가운데 샛길이 있다. 객사터[터] : 지금의 은진면사무소가 있는 자리로 백제때부터 객 사(客舍)가 있었다고 하며 이조때에는 객사로서는 전국에 이름 나 있었다고 한다. 은진현(恩津縣)의 객사(客舍)가 있었던 자리 이다. 길마재[산] : 안산이라고도 하는데 연서리와 방축리 사이에 있 는 산이다. 모양이 마치 길마와 같다하여 길마재라고 부른다 한 다. 동헌터(東軒)[터] : 지금 은진초등학교가 있는 자리로 옛날 은진 현(恩津縣)의 동헌(東軒)이 있었다. 옛날 은진현의 동헌터로서 그 위세라도 자랑하듯 지금도 6그루의 늙은 느티나무가 남아 있 다. 백양동(栢楊洞)[마을] : 연서 안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마 을에는 백양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뱀골[마을] : 연서3리를 백양동 또는 뱀골이라고도 한다. 북문거리(北門)[마을] : 현재 강경경찰서 은진 지서가 있는 자리 로 객사터 북쪽에 있는 마을로 북문거리 또는 북문리라고도 부른 다. 북문리(北門里)[마을] : 북문거리라고도 하는데 객사터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비(碑)석거리[길] : 비선거리라고도 하는데 북문서리 고개에 있 는 길거리로 옛날 은진현감의 선정비등이 많이 서 있었다. 비(碑)선거리[길] : 북문거리 고개에 있는 길로 옛날 은진 고을 을 다스리던 현감의 선정비등이 많이 서 있어서 비석거리라 부르 던 것이 변하여 비선거리라 부른다 한다. 사직단터(社稷壇)[터] : 연서리와 방죽리 사이에 있는 길마재에 있던 은진현(恩津縣)의 사직단(社稷壇)의 터이다. 상리(上里)[마을] : 연정(蓮亭) 위쪽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 가운 데에 샛길이 있어 가운데 고삿 또는 상리라고도 부른다. 아랫말[마을] : 연정(蓮亭)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하리라고도 한 다. 안산(鞍山)[산] : 연서리와 방축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길마재라 고도 부른다. 알량산[산] : 연서리3리 뒤에 있는 산을 말한다. 연동(蓮東)[마을] : 연정(蓮亭) 동쪽에 있는 마을로 피촌말이라 고도 부른다. 연서(蓮西)[마을] : 연정(蓮亭)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연서 라 하였다 하며 이로 인하여 연서리라고 부른다. 연정(蓮亭)터[터] : 옥거리 앞에 있는 연정(蓮亭)의 터로 옛날 이곳에 연못이 있었고 연꽃이 만발하였으며 그 안에 정자가 있었 다 하여 연정(蓮亭)이라 불렀다 한다. 은진고을에서 가장 낭만적 인 장소로 연정에서 고관들이 주연을 베풀렀다 하며 이따금 탐관 오리들이 끼어들어 흥청대며 잔치를 베풀면 돌이 날아 들기도 했 다 한다. 옥(獄)거리[길] : 객사터 앞 큰길 삼거리 동쪽에 있던 은진현의 옥이 있었던 자리로 지금은 논이되어 있으나 옛날에는 슬픔과 한 이 많았던 옥이 있었던 거리이다. 옥(獄)터[터] : 객사터 앞 큰길 삼거리 동쪽에 있는 은진현의 옥 의 터이다. 원고개[고개] : 연서1리 노인회관이 있는 곳으로 옛날 원님이 넘 어 다녔다고 한다. 피촌말[마을] : 연동이라고도 하는데 연정 동쪽에 있는 마을이 다. 주막거리[거리] : 연서1리 마을 가운데에 옛날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쟁이촌[마을] : 홍문거리를 지나서 쟁이촌이 있다. 옛날 여기엔 무당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하리[마을] : 아랫말이라고도 하며 인정 아래쪽에 있다. 홍문거리[마을] : 객사터 앞에 있는 마을로 옛날 홍문이 서 있었 다고 한다. 은진현에서 북쪽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고 번화가 였 다. 홍문리라고도 부른다. 홍문리[마을] : 홍문거리라고도 부르며 객사터 앞에 있는 마을이 다. ▶ 아기장군과 적토마 옛날 은진고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집 옆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이들 부부는 이 나무를 정성껏 위하였 다. 그들 부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없는 것이 한이 되었다. 그래 서 이 나무에게 정성껏 치성을 드렸다. 그런후 어느날 부인에게는 태기가 있어 달이차 옥동자를 분만했 다. 그런데 그 아기는 우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부부는 들에 나 갔다가 돌아와 살그머니 방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 랐다. 아기는 선반위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부부는 걱정이 태 산 같았다. 옛날에는 평민이 장군을 나면 3족을 멸했다고 하니 걱정이 아니될 수 없었다. 아기를 그래로 두면 화가 미칠것만 같 았다. 그래서 부부는 의논 끝에 아기를 죽여 없애기로 하고 다듬 이 돌로 눌러 죽이고 말았다. 그때 집 옆에 있던 큰 나무 속에서 적토마 한 필이 나오더니 힘 껏 뛰어 지금의 동산리 섯받대 능선을 한번딛고 양마산을 걷어차 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도 섯받대 능선과 양마산은 발이 걷어차고 나가 산봉우리가 없어졌다고 하며 이때부터 산 이 름도 양마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