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태안군의 역사 게시판 상세보기

[태안문화원] - 역사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태안군의 역사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07 조회 1520
첨부 jpg 백화산전경.jpg


태안군의 역사



 선사시대

 

신석기시대 안면도(安眠島)의 고남면에서 발견된 10 개소의 패총.

이른바 고남 패총군과 남면의 달산 패총군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데,

이 속에서 출토된 한 두점의 구석기 유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었다.

이같은 유적과 유물들로 미루어보아, 태안지역헤는 지금으로부터 

4500~5000년 경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시대

 

태안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인돌(지석묘)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태안읍 장산리에서 7가 , 그리고 고남면 고남리에서 1기 등,

모두 8기가 발견되었다.

 

고대

 

삼한시대 3한이란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을 일컫음 인데,

본 군과 위치적으로 관련 있는 마한 54개국 중에서 충청남도 내에 위치했던

나라는 모두 16개국이며, 이 중에서 태안에 자리한 나라는

신소도국(臣蘇塗國)과 고랍국(古臘國)인데, 신소도국은 지금의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기슭의 샘골(一名 斜陽洞)이며,

고랍국은 고남면 고남리에 위치해있다.

 

백제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백제가 기원전 18년 한강 유역인 위례성에서 온조왕에 의해 건국되어 근초고왕이

마한의 전 지역과 대방군 등을 병합하여 고대 정복 국가(古代 正服 國家)

등장하면서 발전해 갔다.

369년 근초고왕이 마한 54개국을 완전 정복하여

백제국에 병합할 때 성대혜현(省大兮懸)으로 개편되었다.

이렇게 백제국의 판도에 편입되어 290여 년간 내려오던 태안은,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인해 660년 백제의 멸망과 함께,

다시 통일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크 후 신라경덕왕 16년 소태현으로 개칭되었다.

이렇게 신라의 영토로 편입 된 태안은 270여 년간 내려오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등장하니 다시 태안은 고려의 판도로 편입되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성종(成宗) 2년(983)에 전국을 12주로 나누어 중앙에서 목사(牧使)를 파견하는데

그 중 공주(公州)목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그 후 성종 14년(995)애 존귝울 10도() 4도 호부(都護府)로 관제개편을 단행하여

이때 설치한 10도 하남도(河南道)가 지금의 충청남도에 해당되는데,

이 하남도는 공주와 운주(運州)로 이루어 졌었다.

이후 현종(顯宗) 9년 (1018)에 다시 행정 구역이 개편되는데

이때 태안은 지금의 홍성인 운주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충렬왕(忠烈王) 24년(1298 년)에 소태현(蘇泰縣) 출신 이대순(李大順)이원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소태가 태안(泰安)으로 개칭되고 따라서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조의 지방제도개편으로 1413년 (태종 13)에 군현 제도를 대폭 개편하였는데,

충청도의 관할 하에 태안은 14군중의 하나였다.

 

일본 강점기

 

일본 강점기였던 1914년에 이르러 그들의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개편을 단행하면서 태안군을 폐합하여 서산군에 예속시킴으로서 면으로 격하 됐었다.

 

.

.

.

 

 

 

현재 태안군은 타의에 의해 서산군에 병합되어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 4050호에 따라 태안군에 복군 됨으로서

군민이 모두 군세발전에 활기찬 전진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태안군은 현재 행정구역상 8개 읍면에 65개 법정리,

179개 행정리에 781개의 반,

그리고 493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2008년 현재)